다섯식구 邑長집, 주민등록엔 62명

  • 입력 2005년 4월 14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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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정읍시 A 씨 집. 식구 다섯 명의 평범한 가정이지만 한때(2003년 12월) 이 집의 주민등록상 거주자는 62명에 이르렀다. 시 당국의 ‘인구 늘리기’ 시책에 따라 당시 읍장이던 A 씨가 인근 지역에 사는 친척과 지인들의 주소를 마구 옮겨 놓았기 때문. A 씨는 “워낙 위에서 심적 부담을 줘서…”라며 쑥스러워 했다. 전국의 상당수 기초 지방자치단체들이 너나없이 인구 늘리기를 지상명제로 삼아 무리하게 시행하면서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 인구 늘리기는 크게 전입 유도와 출산 유도의 두 방식으로 이뤄진다. 이 가운데 출산 유도는 젊은층 인구의 감소로 한계가 있어 상당수 기초자치단체는 2, 3년 전부터 ‘출향인사 내 고장 주소 갖기 캠페인’ 등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 전입을 유도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다른 시군의 주민을 빼오는 방식이어서 결국 비용만 들 뿐 ‘제로섬 게임’에 불과하다.》

▽실태=“불법인 줄은 알았지만 할당량을 채우려면 한 명이 아쉬운 판국이어서….”

경기 평택경찰서는 지난해 말 친구가 주운 평택 주민 B 씨의 주민등록증을 이용해 B 씨의 주소지를 충남 천안시로 옮긴 천안시 공무원 최모 씨를 불구속 입건했다.

최 씨는 경찰에서 “할당량 20명을 채우기 위해 그렇게 했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천안시는 “할당을 내린 일은 없다”고 부인했다.

지자체들은 “위장전입은 있을 수 없으며, 정상적인 이사를 장려하는 것일 뿐”이라고 강조하지만 실제로는 공무원들이 앞장서서 위장전입을 시키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전남 신안군 비금면 직원 장모(41) 씨 등 2명은 2003년 7월 전남 목포시에 사는 출향인사 21명이 이사 온 것처럼 전입신고서를 허위로 작성했다가 경찰에 입건됐다.

지난해 말 ‘인구 50만 돌파’라는 목표를 달성한 천안시에서 인구 늘리기 유공 표창을 받은 공무원 31명 가운데 주무부서인 총무과를 제외하고는 건축, 환경 등 민원부서가 가장 많았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공무원들이 민원인들에게 전입 유도를 부탁한 것 아니냐”는 의심어린 시선을 보내고 있다.

▽자치단체 간 마찰=전북 전주시는 지난해 7월 “허위 전출자에 대한 조사를 벌이겠다”며 인근 김제시, 장수군, 부안군 등과 신경전을 벌였다.

매년 1, 2%씩 늘던 인구가 갑자기 감소세로 돌아선 것은 이들 자치단체가 전주시의 인구를 빼가기 때문이라고 판단한 것.

부랴부랴 전북도가 나서서 인구 늘리기 경쟁을 자제해 달라는 공문을 보내 사태를 수습했다.

▽널뛰는 인구 집계…정책혼선=일부 시군구의 인구는 교부세 산정시점에 눈덩이처럼 불었다가 곧 썰물처럼 빠지는 양상을 보인다.

전북 장수군은 2003년 2분기(4∼6월) 인구가 1분기(1∼3월)에 비해 19.2%(5051명)나 늘었으나 3분기(7∼9월)에는 무려 15.3%(4025명)가 줄었다. 경남 합천군도 같은 기간 인구가 5089명 늘었다가 3128명이 빠졌다.

이처럼 인구 늘리기에 매달리는 이유에 대해 자치단체들은 “인구가 많아야 시·군세(市·郡勢) 유지는 물론 교부세 등 중앙정부의 예산 확보가 유리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더 큰 이유는 인구가 줄어들면 행정조직을 줄여야 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대통령령인 ‘자치단체행정기구 및 정원 기준 규정’은 2년 연속 인구 하한선에 미달되면 조직을 축소하도록 하고 있다.

실제로 전북도는 지난해 말 2개 과를 줄였다. 반대로 인구 50만 명을 돌파한 천안시는 1국 3과가 늘어나게 됐으며 그 첫 조치로 최근 시장 비서실 직원 1명(6급)을 늘렸다.

행정자치부 관계자는 “인구는 교부세 산정 항목 31개 가운데 하나에 불과해 실제 예산 배정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다”고 말했다.

충남대 자치행정학과 육동일(陸東一) 교수는 “인구를 늘린다는 목표 자체는 좋지만 임시방편적 처방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경쟁력 있고 차별화된 사업을 발굴하고 교육여건을 개선해 지역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드는 게 인구 늘리기의 첩경”이라고 지적했다.

천안=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

전주=김광오 기자 kokim@donga.com

창원=강정훈 기자 man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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