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2003년 인간게놈지도 완성

  • 입력 2005년 4월 13일 19시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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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 속의 프로메테우스가 제우스의 불을 훔쳐 인간에게 가져다주었듯이 21세기의 프로메테우스들은 신만이 볼 수 있던 생명의 비밀을 인간에게 펼쳐 보였다.

미국 국립인간게놈연구소는 2003년 4월 14일 6개국 생물학자 3000여 명이 인간의 유전암호를 모두 풀어 ‘게놈지도’를 완성했노라고 선언했다.

게놈은 생물에 담긴 모든 유전정보를 말한다. 인간게놈지도를 완성했다는 것은 디옥시리보핵산(DNA)을 구성하는 30억 쌍이 넘는 염기 서열을 밝혀냈다는 뜻이다.

이 지도의 완성 이후 생명의 신비를 파헤치는 ‘포스트 게놈’ 연구에 불이 붙었다.

그간 인간의 유전자 수는 3만 개가 넘을 거라고 해왔지만 게놈지도를 분석한 결과 그 수는 파리와 비슷한 2만∼2만5000개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사람은 그다지 ‘고등한’ 동물이 아니었다.

또 척추동물의 게놈지도 작성이 잇따라 개가 쥐보다 유전학적으로 사람과 더 가깝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침팬지의 게놈 연구에서는 침팬지 유전자 99%가 사람의 것과 비슷하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뒤집어 말하면, 사람과 침팬지의 유전자에는 불과 1%의 차이밖에 없고 이 작은 차이가 사람이냐, 침팬지냐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게놈지도 완성 소식은 병마에 시달리는 환자들에게 복음으로 다가왔다.

암을 비롯해 4000여 종의 난치병과 불치병 치료의 길이 열리고 개인 유전정보는 맞춤형 치료를 가능하게 할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으로 인류는 설♬다. 유전자조작작물(GMO)로 식량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인종과 민족에 대한 게놈 연구는 인류의 기원과 역사를 다른 눈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줄 것이라는 믿음도 생겼다.

반면 공상과학영화에서나 보던 암울한 미래의 실현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유전자 계급사회를 그린 영화 ‘가타카’에서는 사람들이 우성 유전자만을 모아 ‘맞춤 아기’를 만들고 유전자 정보를 통해 미래를 파악한 뒤 인생을 시작한다. 늘 미래를 궁금해 하던 인간의 꿈이 실현된 셈이다.

그러나 미래를 미리 알고 시작하는 인생이 행복할까. 고대 철학자 세네카의 말처럼 ‘미래를 눈치 채는 마음은 비참하다’. 앞날을 알고 실패가 예정된 꿈을 접는 고통은 실패 그 자체 못지않게 잔인한 법. 꿈은 ‘불안한 미래’라는 토양에서 자란다.

김희경 기자 susan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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