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임채청 칼럼]집권 3년차의 검찰

  • 입력 2005년 4월 12일 18시 2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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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연초 본란을 통해 집권 3년차 증후군을 거론한 바 있다. 때 아닌 정계개편론과 때 이른 개헌론에 숨어 있는 3년차 정권의 탈선 가능성을 짚어 본 것이다. 반환점에 접어든 정권의 임기 후반에 대한 불안감과 차기(次期)에 대한 초조감, 그리고 그로 인한 정치적 과욕과 무리를 경계한 것이기도 했다.

요즘은 여권 인사들에게서도 종종 “집권 3년차를 조심해야 한다”는 얘기를 들을 수 있다. 그 초기 증상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전 청와대 행정관이 거액 뇌물 수수 혐의로 구속된 것부터가 불길한 전조다. 그가 청와대 재직 시에도 뇌물을 받았다면 현 정권의 병이 꽤 깊을지도 모른다는 우려에서다.

마사회의 전·후임 회장이 대물림 뇌물 수수 혐의로 함께 기소된 것은 ‘부패와의 전쟁’을 조롱하는 사건이었다. 현 정권의 집권 구호인 개혁이라는 말은 입에 올리기조차 간지럽다. 으레 기운 곳이 다시 해지고 썩은 곳이 계속 썩는 법. 청와대와 마사회는 과거 정권에서도 비리와 관련한 구설수가 끊이지 않았다.

▼기운 곳이 다시 해진다▼

비리 또는 의혹과 가장 친한 용어는 ‘정권 실세’다. 그것들이 서로 짝을 이루어 인구에 회자되면 정권은 이내 초라해지기 시작한다. 역대 정권을 보면 그 시점이 대개 집권세력의 긴장이 이완되는 3년차 전후다. 김대중 정권의 3년차에 무슨 일들이 있었는지 돌아보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그해 ‘린다 김 게이트’ ‘한빛 게이트’ ‘정현준 게이트’ 등이 내내 민심을 어지럽혔다. 게이트마다 어김없이 정권 실세들의 이름이 오르내렸다. 그러한 게이트 시리즈가 그해 말 여당인 민주당의 정풍운동을 촉발하면서 김대중 정권은 급속히 쇠락의 길로 치달았다. 사실 민주당의 분당은 그때 예정된 것이었다.

집권 3년차 정권 실세들의 집단적인 도덕성 해이는 그 시기 정권의 전열 재정비와도 깊은 상관관계가 있다. 어느 대통령이나 집권 초엔 탕평을 내세우지만 2년쯤 지나면 슬그머니 측근 그룹을 핵심 요직에 포진시킴으로써 그들만의 ‘공생의 동아리’가 형성되곤 했기 때문이다. 끼리끼리는 통하지 않는 것이 없는 상황에서 부정과 부패는 저절로 자라는 것이다.

연초 청와대 개편을 비롯한 일련의 인사에 대해 측근 전진 배치 혹은 보은 인사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게 여러모로 마음에 걸린다. 취임 사흘 만에 물러난 이기준 교육부총리 인선과 같은 실책도 배타적인 인사시스템 구축이 주원인이 아닐까 싶다.

그 와중에 터진 철도청의 러시아 유전개발 투자 의혹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열린우리당 이광재 의원이 개입한 사실을 밝혀내지 못했다는 감사원의 발표대로라면 이 의원은 나쁜 이미지를 물려 준 과거 정권 실세들의 피해자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일으킨 자신의 부적절한 처신에 따른 정치적 책임까지 면하기는 어렵지만.

▼검찰의 무거운 발걸음▼

‘오일 게이트’의 진상은 앞으로 검찰이 밝혀야 한다. 의혹이 부풀려질 대로 부풀려진 상태에서 뒤늦게 나서야 하는 검찰의 발걸음이 무거울 것이다. 수사에 착수하기도 전에 특별검사제 논란이 일고 있어 더욱 그럴 것이다. 이제 검찰은 또 시험대에 섰다.

현 정권의 남은 집권기간이 짧아질수록 검찰에 몰아닥칠 외풍은 거세질 수밖에 없다. 의혹이 제기된 뒤 뒤치다꺼리 수사나 하는 수동적 검찰은 이를 이겨 낼 수 없다. 눈을 부릅뜨고 권력형 비리를 찾아내 미리 단죄하는 능동적 검찰만이 당당히 설 수 있다. 그것이 현 정권에도 결국 도움이 된다. 그렇지 않으면 권력의 그늘 아래서 비리를 키우다 3년 뒤 더 큰 앙화로 고통을 겪을 수 있어서다. 집권 3년차엔 검찰도 결연히 숨을 가다듬어야 한다. ‘연성(軟性) 검찰’은 검찰의 길이 아니다.

임채청 편집국 부국장 ccl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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