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박헌주]‘임대주택〓싸구려’ 인식 바꿔야

  • 입력 2005년 4월 12일 18시 2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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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비평가인 제러미 리프킨(Jeremy Rifkin)은 저서 ‘소유의 종말’에서 21세기의 자본주의를 ‘접속(access)’으로 표현하고 있다. 접속은 일시적으로 사용하는 권리, 즉 임대를 뜻한다. 자본주의가 네트워크 경제로 바뀌면서 소유보다는 필요할 때 빌려 쓰는 새로운 단계로 접어든다는 주장이다. 소유는 비용과 책임이 뒤따르고 변화와 혁신이 빠르게 이뤄지는 시대에는 거추장스럽다.

따라서 소비자는 서비스만 받으면서 사용료를 내는 것이 경제적이고 편리하다. 렌터카, 정수기나 사무기기의 렌털 서비스, 휴대전화 등이 좋은 예다.

참여정부는 2012년까지 60조 원 이상의 재정과 국민주택기금을 지원해 국민임대주택 100만 가구, 장기임대주택 50만 가구를 공급할 계획이다. 임대주택의 대량공급으로 주택도 조만간 접속경제의 한 부문이 될 것이다. 특히 주택 가격이 안정될수록 ‘내 집’보다는 임대주택을 선호할 것이다.

하지만 현행 임대주택정책은 입주 대상을 저소득층으로 한정하고 있다 보니 건설비가 실제 건설단가의 70∼80%에 지나지 않고 소형 위주다. 건설교통부가 정한 최저 주거기준에도 못 미치는 가구가 334만 가구에 이르는 현실적 여건만 감안하면 이는 바람직한 정책방향이다.

그러나 이렇게 건설한 임대주택은 열등재로 취급되어 일반 주택단지와 격리되고 입주자는 따돌림 당하고 있다. 심지어 주민의 주거복지를 책임져야 할 지방자치단체조차 세수가 줄고 주변 집값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관할 구역에 임대주택을 짓지 못하게 한다. 시장도 임대주택을 기피함으로써 민간이 건설한 공공임대주택은 1997년 9만1000가구에서 2003년에는 1만여 가구로 크게 줄었다. 국민임대주택도 대한주택공사가 공급 목표를 채우고는 있지만 비용 부담이 늘어 2003년까지 약 1400억 원의 적자가 발생했다. 이 때문에 정부의 임대주택이 계획대로 공급될지 우려된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주택의 수급불균형으로 집값이 많이 올라 임대보다 소유를 선호하는 경향이 강하다. 주택은 사고팔거나 소유할 때 비용이 많이 들어가므로 집값이 오르지 않으면 임대가 훨씬 경제적이다. 정부는 집값 안정을 주택정책의 최우선 목표로 정하고 있다. 이는 주택에 대한 의식을 소유에서 거주의 수단으로 바꿀 것이다. 또한 고용방식이 평생직장에서 평생직업으로 바뀌고, 주5일 근무제 등으로 거주지 이동성이 커지고 있다.

따라서 임대주택을 누구나 원하는 기간에 안심하고 살 수 있도록 공급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임대주택을 일반주택보다 고급스럽게 지어 싸구려라는 선입견을 개선해야 한다. 집은 50년 이상 사용하는 내구재다. 임대나 분양은 입주자의 경제적 사정이나 선호에 따른 선택에 지나지 않는다. 현재의 입주자 부담능력을 기초로 임대주택을 공급한다면 자원낭비다.

임대주택도 미래를 내다보고 수요자가 필요로 하는 규모와 품질로 건설해야 한다. 그래야 수명을 다할 때까지 양질의 주택서비스를 생산할 수 있고 임대주택 수요를 창출해 투자도 활성화된다.

주택단지는 사회공동체의 기초단위이므로 사회적 통합을 우선적으로 고려해 조성해야 한다. 임대주택을 따로 건설하는 경우 열등재로 취급돼 입주를 꺼리게 되고 임대주택 공급도 어렵게 된다. 임대주택 공급을 늘리면서 더불어 사는 공동체 문화가 형성되도록 임대주택과 분양주택, 소형주택과 중대형주택을 한 단지에 섞어 건설해야 할 것이다.

박헌주 주택도시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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