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인준 칼럼]부딪쳐야 뜨는 대통령

  • 입력 2005년 4월 11일 18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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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말이 롤러코스터 같다.

노무현 대통령이 “북한에도 얼굴 붉힐 때는 붉혀야 한다”고 했다는 뉴스가 베를린발로 들어왔다. 독일로 출국하기 전엔 일본에 대해 “침략을 영광으로 생각하는 사람들과 함께 사는 것은 전 세계에 큰 불행”이라 했다. 대통령이 ‘얼굴 붉히기를 마다하지 않을 상대’로 먼저 꼽은 나라는 미국이었다.

2년 전 미국 땅을 처음 밟았을 때 대통령은 “미국이 도와주지 않았으면 내가 북한 수용소에 있을지도…”라며 고마운 미국을 칭송했다. 지난해 한일정상회담 때는 “과거사를 쟁점으로 제기하지 않겠다”며 일본에 면죄부를 선물하는 듯했다. ‘핵은 자위용’이라는 북한 주장에 “일리 있다”고 한 것은 5개월 전이다.

대통령은 논란을 빚을 만큼 이들 3자에게 유화(宥和) 제스처를 보였다가 ‘할 말은 한다’는 포문을 전방위로 잇달아 열어버린 셈이다.

정치외교를 하다 보면 눈앞의 상황에 영합하는 발언도, 강한 결의(決意)의 표명도 필요하다. 그리고 상황은 바람처럼 변한다. 그럴수록 말이 빚으로 남지 않도록, 길게 보고 신중하게 언급하는 대통령이 국민에겐 더 필요하다. 대통령의 말빚은 결국 국민이 갚을 판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에 대한 국민 지지율도 롤러코스터 같다.

▼널뛰는 말, 국민이 갚을 빚▼

취임 초 80∼90%엔 ‘안팎 풍파 잘 헤쳐 멋진 나라 만들어 달라’는 염원이 실려 있었다. 거기서 30%대로 떨어지는 데 1년이 안 걸렸다. ‘싸움만 잘하는 대통령, 말에 열매가 없는 대통령, 먹고사는 문제에 무능한 대통령, 정파적 이익에 더 매달리는 대통령,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변질시킬 것 같은 대통령’에 대한 응답이었다.

탄핵 기각 직후 지지율은 50%까지 회복됐다. 그것이 반년 만에 20%대로 반 토막 났다. ‘역시 안 변한다, 더 엇나간다, 통합이 아니라 분열로 갈 데까지 가보겠다는 거다, 민생은 떠내려가는데 과거타령에 개혁구호뿐이다’는 분노가 묻어 있었다.

3월 하순 대통령 지지율이 48%로 올라, 반대하는 50%에 근접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일본을 향한 강공이 지지율 급등의 요인이라는 해석이 붙었다.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까지 이 부분에선 대통령 손을 들어줬다.

잘한다는 데 기분 나쁠 리 없다. 더구나 포퓰리즘을 버리라고 대통령에게 주문하는 것은 초야에 묻히라는 강요만큼이나 현실성이 없어 보인다. 일본에 대해서는 대통령이 대다수 국민의 대변자 같기도 하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여론의 박수 속에 대통령 지지율이 올라가면 나라와 국민에게 득이 되는 것은 무엇일까 하는 점이다. ‘맞장 잘 뜨는’ 파이터 대통령이 국내에서 잠시 환호를 받는 것과 관계국들의 정부, 지도자, 시민들에게서 신뢰를 얻는 것은 별개다.

‘대통령이 만만찮으니 한국과 더 협력하자’는 분위기가 주변 강국들에 퍼질지, ‘저런 대통령은 믿을 수 없으니 한국을 달리 다루자’는 생각들이 행동으로 나타날지 살피지 않을 수 없다. 한미관계에서조차 대통령이 ‘마이 웨이’를 선창하고 국방장관까지 따라 외치는 모습이 아찔하다는 국민이 많다.

중국이 미국보다 큰 교역 상대국임을 내세우는 사람도 물론 있다. 친중(親中)으로 탈미(脫美)를 보상받을 수 있다는 기대가 깔려 있다. 그런데 한국에서 도는 돈 중에 미국을 풍향계로 삼는 돈이 많을까, 중국을 쳐다보고 움직이는 돈이 많을까. 북한 유사시에 중국이 미국보다 적극적으로 한국의 꿈을 밀어줄까. 고구려사를 유린한 중국이다. 장래의 통일문제를 시야에 넣고 볼 때 일본의 역사왜곡보다 심각한 미래형 역사 가로채기다.

▼지지율 올라도 풀린 문제는 없다▼

국민감정에 불 지펴 지지율 올리는 리더십이 곧 국익을 위한 리더십은 아니다. 상대와 부닥칠 때만 빛이 나는 리더십은 ‘해결의 리더십’이 아니다. 대통령 지지율과 국가 이익이 동반성장 아닌 양극화로 치달을 위험성을 놓쳐서는 안 된다. 국내에서 대통령 지지율이 올라간다고 해서 풀린 일은 경제에도, 외교안보에도 아직 없다.

감정과 기분의 원가(原價)를 따질 줄 아는 지혜가 국민에게도 절실하다. 민심이 냉철해야 대통령도, 야당 대표도 중심을 잡을 수 있을 듯한 나라가 한국이다.

배인준 논설실장 inj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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