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한국문화와 역사의식’…덫에서 벗어나라

  • 입력 2005년 4월 8일 17시 1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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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영 정조 시대 서울 경기지역을 생활권으로 하는 경화사족은 ‘진경문화’로 대표되는 가장 한국적인 형태의 예술을 창출해 냈다. 사진은 가을 금강산의 아름다운 경치를 그린 겸재 정선의 ‘풍악내산총도’.
조선 영 정조 시대 서울 경기지역을 생활권으로 하는 경화사족은 ‘진경문화’로 대표되는 가장 한국적인 형태의 예술을 창출해 냈다. 사진은 가을 금강산의 아름다운 경치를 그린 겸재 정선의 ‘풍악내산총도’.
◇한국문화와 역사의식/유봉학 지음/334쪽·1만6000원·신구문화사

일제 식민사학자들은 조선이 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조선의 역사가 지닌 반도적 성격과 타율성, 정체성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정치적으로 사대주의와 당파 싸움으로 점철됐고, 사상적으로는 주자학 사상이 공리공담으로 흘러 민생은 도탄에 빠지고 사회 경제 상황은 정체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얼마나 이 일제 식민사학에서 자유로운가. 역사학자인 저자의 질문은 북한의 역사연구는 물론 1960년대의 근대화론이나 1970년대의 민족중흥론, 1980년대의 국사 찾기 운동론, 1990년대의 세계화론까지 이어진다.

우리의 전통문화, 특히 유교 불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토대로 한 이 같은 논의들은 전통시대를 이끌었던 전통사상의 순기능을 인정하지 않고 역기능만 강조한 일제 식민사학이 낳은 역사인식의 덫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일례로 실학은 조선 정통주자학의 연장선상에서 그 발전적 극복을 시도한 새로운 학풍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역사교과서는 중앙에서 밀려난 재야 지식인의 학문과 사상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는 결국 성리학을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식민사관의 ‘유교망국론’으로 가도록 유도하고 있다고 저자는 해석한다.

퇴계와 율곡은 중국 주자학을 완전히 소화해 조선의 현실에 적용 가능한 실천적 성격으로 변화시키고 조선사회가 나아가야 할 사회 전반의 주자학적 기준을 제시한 위대한 학자들이었다. 나아가 남인의 성호 이익과 다산 정약용은 퇴계학파 주자학의 정통을 계승했고, 노론의 연암 박지원과 담헌 홍대용은 율곡학파 주자학의 정통적 계승자였다는 게 저자의 설명.

이 같은 인식을 토대로 저자는 조선이 500년이라는 장구한 기간 어떻게 체제와 질서를 만들어 갔는지 조명하고 있다. 특히 조선 전기의 유불(儒佛) 교체와 조선 성리학, 조선후기 진경(眞景) 문화와 실학을 조선사회의 발전 과정과 연관지어 의미를 찾았다. 또 사림과 경화사족(京華士族)의 대두, 19세기 세도정치기의 역사와 문화도 새로운 시각에서 조명했다.

특히 영·정조시대 서울 경기 지역을 생활권으로 하는 경화사족은 우리 전통문화와 예술의 전형으로 이해되는 한국적인 예술을 창조했다고 저자는 평가했다.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화, 사천 이병연의 진경시, 원교 이광사의 동국진체 등으로 대표되는 조선 고유의 진경문화가 바로 이 시기 조선사회를 이끈 경화사족의 산물이었다는 설명이다.

사회의 지도적 지식인으로서 위상을 회복하려던 경화사족의 노력은 결국 실학으로 나타났고, 박지원의 소설 ‘양반전’과 ‘허생전’은 이를 잘 보여 준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양반전’이 양반생활에 대한 해학적 묘사로 양반계층의 새로운 윤리와 행동양식을 제시했다면, ‘허생전’은 놀고먹는 사람으로 전락한 사족이 사회적 지도력을 회복하기 위해 생산 활동에 종사하는 대안을 제시한 작품이라는 해석이다.

경화사족 지식인들의 이런 생각은 전국 제일의 모범적 상업도시로 발전시키려 했던 화성 신도시 건설에서 실천됐다. 화성은 실학자들의 선진적 구상을 정책으로 수렴해 새로운 시대를 지향하면서 전통문화와 외래문화의 융합을 시도한 개혁의 시범도시였다는 것이다.

이철희 기자 klim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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