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술라’…원초적 평등을 꿈꾼 흑인여성들의 일탈

  • 입력 2005년 4월 8일 16시 4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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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라/토니 모리슨 지음/232쪽·1만 원·들녘

“저기 언덕을 보게나. 저곳이 기름지고 비옥한 땅이지. 저길 주겠네.” 백인 주인이 말했다. “하지만 저기는 언덕 꼭대기인뎁쇼.” 흑인 노예가 대답했다.

“우리가 보기에는 높은 곳이지. 하지만 하느님이 내려다보면 저곳은 바닥이야. 천국의 바닥, 최상의 땅이지.”

일을 잘 하면 땅을 주겠다고 약속한 백인 주인이 흑인 노예에게 척박한 언덕배기 땅을 주며 둘러댄 말이다. 노벨 문학상 수상작가 토니 모리슨의 소설 ‘술라’의 배경이 된 ‘바닥 촌’은 이렇게 생겼다.

이 소설은 작가가 1973년에 발표한 두 번째 작품으로,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오하이오 주 메달리온 읍내 언덕배기의 ‘바닥 촌’에서 산 피스 가(家)의 흑인 여성 3대(에바, 에바의 딸 한나, 한나의 딸 술라)의 이야기다.

메달리온에 사는 ‘에바’는 보이보이라는 남자와 결혼해 두 딸인 한나와 펄, 아들 플럼을 낳는다. 하지만 보이보이는 바람을 피우고 그녀 곁을 떠나간다. 에바는 아이들을 먹여 살릴 보험금을 타내려고 기차에 한 쪽 다리를 넣어 절단당할 만큼 처절한 모성을 드러낸다.

에바는 자신을 떠나간 보이보이를 증오해 그를 제외한 모든 남자들과 연인관계를 맺는다. 에바의 딸 ‘한나’도 남편 리커스가 죽고 난 후 이웃 남자들과 자유롭게 성관계를 가지며 성적 욕구 자체를 즐기는 쾌락주의자가 된다.

이런 환경에서 자란 한나의 딸 ‘술라’는 자기중심적이고 반도덕적인 여성으로 성장한다. 그녀는 어린 시절 친구인 넬의 남편 에이잭스와 불륜을 저지르거나 실수로 소년을 강물에 빠뜨려 죽게 했는데도 아무런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 결국 마을사람들은 금기를 넘은 그녀를 ‘바퀴벌레’ ‘마녀’라 부르며 공동체 생활에서 소외시킨다.

이 작품은 피스 가 여인들의 일탈을 통해 남녀 관계를 여성이 남성에게 억압되는 상하 관계가 아닌 암컷과 수컷이라는 원초적 ‘평등 관계’로 회복시키고 있다.

저자는 특히 공동체가 개인의 욕망을 제한하지만 결국은 개인의 보호막이 된다는 1970년대 흑인문학의 흐름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지나친 자기애 때문에 공동체에서 배척받는 술라를 통해 단순히 흑인 여성의 문제를 넘어서 ‘한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을 탐구하려 했던 것이다.

모리슨은 오하이오 주 태생으로 역사와 신화, 세속적인 것과 환상적인 것을 한 편의 작품으로 엮어내는 이야기꾼으로 평가받았다. 1988년 ‘빌러브드’로 퓰리처상을, 1993년 ‘재즈’로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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