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봉렬]문화재 수난, 이대로 둘건가

  • 입력 2005년 4월 7일 18시 2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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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목일에 발생한 참혹한 산불이 천년고찰인 낙산사까지 삼켜버렸다. 조선 왕실의 염원이 깃든 아름다운 동종은 완전 용해되었으며 조선시대의 희귀한 7층석탑 역시 붕괴 위험에 처해 있다. 낙산사는 창건 이후 6·25전쟁까지 크고 작은 9차례의 화재를 당했는데 그 열 번째 화재로 건물이 전소되는 가장 큰 피해를 당했다.

어이가 없고 반성이 앞선다. 최근 5년간 전국 산불 피해의 91%가 강원 동해안 지역에 집중되어 있었다. 산불로 산림이 황폐해져 여름철 장마 피해가 극심한 상습지역이기도 하다. 이 지역의 지형과 기후조건에 대한 면밀한 연구와 대책이 수립되었더라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겠지만 매년 연례행사를 지켜보듯 근본적인 대책이 없었다.

우리나라 건축문화재는 화마에 취약한 목조건물들이다. 또한 그 입지는 대부분 깊은 산속이어서 늘 산불과 같은 천재지변이나 도난과 같은 인재의 위험 앞에 놓여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화재 당국이나 필자를 포함한 전문가들 누구도 방재 대책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한 적이 없다.

▼산불-도난 등 훼손 잇따라▼

문화재는 한 나라의 문화와 역사가 만들어 낸, 다른 것으로 대체 불가능한 특수한 자산이다. 문화재를 지키는 최상의 방법이 원형 그대로의 보존이라면 그 다음이 부분적 수리이고 최후의 수단이 복원이다. 아무리 첨단 기술과 재원을 투자해도 축적된 역사의 시간마저 복원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일반 건물의 재난은 보험에 들고 국가가 피해를 보상하면 그나마 해결할 수 있겠지만 한번 훼손되고 사라진 문화재는 어떤 사후 조치도 무의미하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산불이나 사태 같은 천재지변으로 훼손된 문화재보다 인재로 인한 문화재 피해가 훨씬 컸던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20년 전 국내에 1점밖에 없는 3층목탑인 전남 화순 쌍봉사 대웅전이 사찰 측의 실화로 완전 소실됐다. 최근에는 경남 함양의 고가옥 여러 채가 계획적인 방화로 피해를 봤다.

도난 피해는 더욱 심각하다. 전남 순천 송광사에 봉안돼 있던 고승들의 영정은 건물의 벽체까지 뚫리면서 도난당했다. 전국에 산재한 고분 대부분이 도굴당했음은 물론 사찰 서원 고택들이 보관해 온 고서적이나 그림 등 소중한 문화재들도 도난 위험에 직면해 있다.

늘 사건이 터지면 해당 소유자들은 당국의 소홀과 무성의를 원망하고 문화재 관리당국은 예산과 인원 부족을 탓한다. 그러나 모든 책임을 당국에만 전가할 수는 없다. 문화재는 소유자는 물론 이를 향유하는 모든 국민이 지켜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우선 체계적인 방재 시스템이 구축되어야 한다. 은행 범죄에 대한 출동 시스템과 같은 문화재 조기 경보체제가 시급하다. 경찰과 소방서 군부대, 심지어 시민조직과 연계된 경보체제로 신속한 신고와 출동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문화재 당국의 정기적인 조사와 감독, 대책 수립도 필요하다. 낙산사에는 불행 중 다행으로 지하대피소가 마련돼 있어 보물 1362호인 건칠관음보살좌상과 탱화들을 보존할 수 있었다. 차제에 전국적으로 소방시설은 물론 문화재 대피시설까지 조성하는 것이 전화위복의 조치일 것이다.

▼체계적 방재시스템 시급▼

민간의 노력도 중요하다. 지금도 문화재 보존을 위한 시민활동들이 있지만 내셔널 트러스트 등은 전문가들에 국한되고 문화재 지킴이 활동은 일부 대도시에 한정돼 있다. 지방의 오지에 산재된 문화재들을 지키기에는 불충분하다. 오히려 지방 학교나 청년조직과 연계하든가, 점점 유명무실해 가는 향토예비군에 의용소방대나 자경대와 같은 역할을 부여하는 것도 방안일 수 있다. 시민운동과 교육을 통해 문화재 도난이나 훼손을 중범죄로 취급하는 사회적 여론도 형성해야 한다.

김봉렬 문화재위원·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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