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비정한 종족이라는 편견은 버려줘!

  • 입력 2005년 4월 7일 18시 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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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동물은? 아마 거미가 아닐까. 거미는 배가 고프면 동료들은 물론 형제자매와 부모마저 잡아먹기도 한다. 오로지 힘이 센 놈만이 살아남는 비정한 집단이다.

하지만 예외도 있다. 수백∼수만 마리가 모여 함께 집을 짓고 먹이를 잡으며 사는 녀석들이 있다.

서울대 기초과학연구원 김길원 박사는 서로 다투지 않고 협동하는 ‘특이한’ 거미(Amaurobius ferox) 새끼들의 진화 메커니즘을 실험적으로 처음 제시했다. 놀랍게도 이 새끼 거미들이 서로 다투지 않는 데에는 자신의 몸을 먹이로 내주는 엄마의 희생적 행동이 근본적 요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 거미는 유럽 지역 동굴이나 돌 밑 등 빛이 없고 축축한 곳에 집을 짓고 산다. 어미는 한 번에 100여마리의 새끼를 낳은 후 다시 스프 형태로 알을 낳아 새끼에게 ‘영양식’으로 제공한다.

하지만 이 먹이가 금세 바닥이 나면 어미는 자신의 몸을 새끼들에게 내준다. 더듬이나 다리로 거미줄을 두드리며 새끼들에게 ‘모이라’는 신호를 보내는 것.

새끼들 가운데에는 당연히 먼저 어미에게 도착해 덤벼드는 녀석들이 있다. 이때 어미는 한 마리도 빠지지 않고 모일 때까지 몸을 내주지 않는다. 자신의 배에 새끼 모두가 기어올라오면 그제서야 다리를 늘어뜨리며 마지막 신호를 보낸다. 어미의 몸이 모두 사라지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불과 수초.

○ 어미거미 희생으로 공격성 억제

우리에게 엽기적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 이런 행동이 새끼들의 생활에 중요한 메시지를 던진다는 것이 김 박사의 설명이다.

그는 “엄마의 적극적 희생으로 새끼들은 발달과 영양 면에서 동질성을 갖게 돼 서로 공격을 억제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때부터 한 달간 새끼들은 협동하며 살다가 각자 독립생활을 시작한다. 김 박사는 이 한 달간 새끼들이 어떻게 도우며 사는지를 연구했다.

우선 새끼들의 행동은 먹이의 크기와 관계가 있다. 새끼 거미의 몸무게는 2mg. 만일 거미줄에 걸린 먹이가 1mg 정도면 새끼 거미는 ‘각자 알아서’ 잡아먹는다. 하지만 5mg의 먹이가 나타나면 협동은 해야겠지만 나눠먹기에 양이 충분치 않은 탓에 싸움이 벌어진다.

○ 먹이제압 등 서로 역할 분담

이에 비해 자신보다 20배 무거운 40mg짜리 먹이가 걸리면 일사불란한 협동행동을 나타낸다. 먹이에 먼저 도착한 녀석은 먹이의 저항을 제압하기 위해 다리 등을 입으로 물고 잡아당기고 있다.

이후 늦게 도착한 녀석들은 느긋하게 맛있는 부위를 먹어치운다. 먹이에 도달하는 시간에 따라 서로의 역할을 효과적으로 분담하는 것이다.

김 박사는 이런 사실들을 중심으로 2편의 논문을 작성했다. 프랑스 낭시대학과 공동으로 진행된 이 연구는 조만간 과학전문지 ‘행동 생태학과 사회 생물학 (Behavioral Ecology & Sociobiology)’에 이례적으로 동시에 소개될 예정이다.

공동연구자인 서울대 생명과학부 최재천 교수는 “세계적으로 거미 새끼에 대한 연구는 거의 없었다”며 “심사를 맡은 학자들이 찬사를 아끼지 않는 등 한국의 동물행동학 연구수준을 크게 인정받았다”고 말했다.

김훈기 동아사이언스 기자 wolf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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