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다가구 집값 공시 허점투성이…稅기준 혼란

  • 입력 2005년 4월 7일 02시 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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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주택가격 공시제도’의 문제점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전국의 단독·다가구주택 가격을 전수(全數) 조사해 이를 토대로 세금을 공정하게 부과하겠다는 것이지만 계획이 제대로 시행될 수 없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공시주택가격의 신뢰성이 떨어져 이를 기준으로 매긴 세금의 공정성도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짧은 준비기간… 조사인력 턱없이 부족▼

▽현장 확인 않고 집값 매겨=3개월 만에 모든 주택가격을 조사하느라 정확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던 게 화근이다. 인력 부족으로 현장조사를 제대로 한 곳이 드물었다.

서울 강남구청은 세무과 직원들이 표준주택가격을 기준으로 △건물대장 △개별공시지가 △용도 △지구 △취득연도 등의 자료와 건교부의 가격 비교표를 토대로 가격을 매기면 감정평가사들이 적정성을 검토했다.

하지만 개별공시지가가 주변과 크게 차이가 나는 ‘특이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현장 조사를 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A감정평가법인 관계자는 “단독·다가구주택은 벽의 두께나 재질, 건물의 안전도 등에 따라 값이 달라진다”며 “현장조사도 제대로 하지 않고 공시주택가격을 산정했다면 문제”라고 지적했다.

부산 부산진구청은 5만7000여 가구를 팀장을 포함한 8명의 직원이 처리했다. 1명이 3개월 동안 7125건을 처리한 셈이다. 구청 관계자는 “정확한 시세조사는 기대하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가격 산정의 기준이 된 표준주택의 수가 너무 적어 평가의 신뢰성을 담보하기 힘들다는 지적도 있다. 서울 송파구청은 평가 대상이 된 단독 및 다가구 주택이 1만4000여 가구인 데 비해 표준주택은 2%에 불과한 283가구였다. 송파구청 관계자는 “적어도 표준주택이 전체 주택수의 10%는 돼야 제대로 가격을 산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표준주택이 대부분 연와조(벽돌이나 블록 등을 쌓아서 만든 구조)로 구성돼 철근이나 철골조 등으로 지어진 주택가격을 산정하기에는 적절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집주인도 동사무소도 “뭔지 잘 몰라요”▼

▽열람 불편도 크다=까다로운 열람 절차와 홍보 부족도 문제다.

현재 인터넷 열람이 가능한 곳은 서울 강남구청뿐. 다른 지자체는 전화 문의를 하거나 시군구청 또는 동사무소를 직접 방문해야 열람이 가능하다.

하지만 동사무소에서는 아예 열람이 불가능한 곳도 있고, 가능하더라도 별도 창구가 없어 민원인이 담당자를 찾아다니며 한참을 기다리는 일이 많다.

대전 서구 갈마1동에 사는 이모(43) 씨는 “주택 가격을 알아보기 위해 서구청 세무과에 전화를 걸었는데 ‘준비가 덜 됐다’는 답변만 들었다”고 불만을 표시했다.

서울 성북구청과 중구청은 “동사무소 직원들이 제대로 답변해주지 못할 것”이라며 구청에서만 주택가격 열람을 허용하고 있다.

▼지자체 엇갈린 희비… 지방 稅收감소 울상▼

▽세수는 서울 늘고 지방 줄어=공시주택가격으로 추정한 지방자치단체들의 재산세 수입은 서울은 늘어나지만 지방은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본보가 서울 25개 구청과 인천 대전 부산 대구 광주 울산 제주시 등 32개 지자체 담당 공무원을 대상으로 공시주택가격에 따른 재산세 수입 전망을 조사한 결과 서울 종로구 송파구 광진구 등 10개구는 재산세 수입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반면 대전을 제외한 부산 인천 등 광역시 대부분은 재산세 수입이 최고 40%까지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이번 제도가 값이 비싼 일부 고급주택의 세금 부담을 높이고 값이 싼 주택의 부담은 낮추는 데 초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지자체 간 갈등도 예상된다.

상당수 지자체의 재산세 수입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는데도 경기 성남시는 지난달 29일 재산세를 50% 깎아주는 내용의 조례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송파구청 관계자는 “세금 수입이 줄어들었는데도 세금을 깎아줘야 하는 압박만 받게 됐다”며 성남시에 대해 불만을 나타냈다.

▼오래된 단독주택 건물값도 포함… 논란일듯▼

▽어떻게 해야 하나=전문가들은 너무 급하게 서둘러 문제가 생겼다고 입을 모았다.

가격 산정 작업에 참여했던 한 감정평가사는 “작업을 위해 꼭 필요한 컴퓨터 프로그램조차 제대로 지원되지 않아 어려움을 겪었다”고 말했다.

특히 단독주택의 건물가격 산정 기준이 모호해 객관적인 기준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B감정평가법인 관계자는 “가격 산정에 건물 가격이 상당부분 반영됐는데, 이는 오래된 건물은 값을 쳐주지 않는 현실과 동떨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주택가격을 정하면서 산출된 토지가격이 건교부가 산정하는 개별공시지가보다 크게 높은 것도 문제다.

C감정평가법인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수십%, 개별지가가 현실화되지 않은 지방은 몇 배씩 높아진 곳도 있다”고 말했다. 시가를 반영하다 보니 토지 단가가 기존 개별지가보다 크게 높아진 것.

단독·다가구주택 소유주 입장에서는 이달 20일까지 시군구청이나 읍면동사무소를 방문해 공시주택가격이 제대로 매겨졌는지 확인해보는 것이 좋다. 지금 시세가 아닌 지난해 말이나 올해 초 시세를 파악한 뒤 0.8을 곱한 가격과 비슷해야 한다. 공시주택가격은 올 1월 1일 시세의 80% 수준으로 맞춰졌기 때문이다.

황재성 기자 jsonhng@donga.com

정임수 기자 imsoo@donga.com

대전=이기진 기자 doyoc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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