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한국에는 ‘다와라 요시후미’가 왜 없나

  • 입력 2005년 4월 6일 21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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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시민단체 ‘어린이와 교과서 전국네트 21’의 다와라 요시후미(俵義文·64) 사무국장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왜곡 교과서 채택에 반대하는 일본 시민연대의 흔들리지 않는 리더이기 때문이다. 그가 없었다면 2001년 후소샤(扶桑社)판 역사교과서의 채택률을 0.039%로 가라앉힌 ‘시민의 승리’는 불가능했다. 그는 이번에도 “채택률 제로를 목표로 다시 뛰겠다”고 밝혔다.

대학 졸업 후 교과서출판사에서 일했던 그는 1965년 일본의 교과서검정제도에 대해 위헌소송을 낸 이에나가 사부로(家永三郞) 도쿄교육대 교수를 돕기 시작하면서부터 40년간 외길을 걷고 있다. 2001년에는 전국 150여 곳을 돌면서 후소샤판 역사교과서를 ‘위험한 교과서’라고 비판했다.

일본 문부과학성이 아무리 은밀하게 출판사를 조종해도 그의 안테나를 벗어나지는 못한다. 몇 십년간 쌓아온 인적 네트워크와 전문지식이 있기 때문이다. 그는 우익으로부터 ‘한국의 앞잡이’ ‘역적’ ‘비(非)국민(매국노)’이라는 공격을 받으면서도,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인 조국’ 일본의 역사 왜곡을 바로잡는 일에 생을 바치고 있다. 진실을 위해서다.

그런데 ‘피해자’라는 우리는 어떤가. 1982년에 이미 교과서파동이 있었지만 ‘아시아평화와 역사교육연대’(일본교과서바로잡기 운동본부)가 발족한 것은 2001년 3월이다. ‘올바른 역사교육을 위한 의원 모임’은 올해 2월에야 공식출범했다. 정부도 일이 있을 때만 ‘대책반’을 만드느니, ‘분석팀’을 두느니 법석을 떨지만 그때뿐이었다. 일본의 우익 성향 국회의원들이 12년 전에 ‘역사검토위원회’를, 그리고 8년 전에 ‘일본의 앞날과 역사교육을 생각하는 젊은 의원 모임’을 만들어 우익교과서를 지원하고 있는 것과는 비교조차 안 된다.

늦긴 하지만 한국에도 ‘다와라 요시후미’가 필요하다. 시민단체나 조직들도 먼 장래까지 내다보고 꾸준히 활동해야 한다. 정부가 이달 중에 만들겠다는 ‘바른역사기획단’도 일과성(一過性) 활동에 그쳐서는 안 된다. 가해국 시민의 열정과 끈기에도 못 미치는 정신자세로는 일본의 역사 왜곡을 바로잡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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