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내손안의 영화 ‘DMB 영화’의 성공 조건

  • 입력 2005년 4월 6일 18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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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멀티미디어 방송(DMB)이 본격 실시되는 5월.

사람들은 손 안에 극장을 들고 다니게 된다. 496인치짜리 대형 스크린에 담기던 영화는 3인치 크기의 DMB 모니터 안에 몸을 구겨 넣게 된다.

영화는 최근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이 전국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DMB로 보고 싶은 프로그램’ 설문조사에서 드라마, 음악에 이어 ‘선호도’ 3위를 차지한 주요 콘텐츠. 이동하면서, 일하면서, 심지어 연인과 사랑의 말을 나누면서도 슬쩍슬쩍 보고 싶다는 관객의 욕망과 DMB라는 새로운 환경의 결합은 지금까지의 영화 제작 기법과 미학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을 것으로 예상된다.

‘예술적인 롱테이크는 기피 대상이다. 30분이 최대 상영시간이다. 기승전결의 서사구조는 잊어버려라.’ 예측 가능한 DMB용 영화의 미래상을 영화 관계자들에게 들어 봤다.

○ 사이즈가 문제다

“얼굴 큰 두 사람이 나와서 만담하는 걸 찍어야 되는 것 아냐?”

2003년 ‘이공(異共)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DMB 화면보다 약간 작은 모바일용 디지털영화를 만들었던 한국영화아카데미 출신 감독들 사이에서 오간 농담이다.

배우의 얼굴만으로도 화면이 꽉 차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이들은 △롱 샷(인물의 전신을 잡는 것)보다는 클로즈업이나 미디엄 샷(인물의 상반신을 잡는 것)을 쓰고 △인물의 배경이 많이 움직이지 않도록 하며 △배우의 움직임이 너무 빠르지 않도록 한다는 내용의 ‘작은 화면용’ 제작 가이드를 내놓았다.

○ 러닝타임 30분을 넘지마라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갈 때, 약속 장소에서 누군가를 기다릴 때, 직장에서 일하다 심심할 때 등에 보는 DMB로 러닝타임 100분짜리 영화를 보기는 어렵다.

적당한 상영시간은 5∼8분 정도. 최대 30분(단편영화 수준)을 넘기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측된다. 물론 추석이나 설에 고향 가는 차 안에서라면 ‘반지의 제왕’ 3부작을 다 볼 수도 있겠지만….

○ 촬영의 ‘금기’

작은 화면으로 몹시 흔들리거나 재빨리 좌우를 훑는 장면을 보면 머리가 아플 수 있다. 따라서 카메라를 어깨에 놓고 찍는 핸드헬드(hand-held) 촬영이나 패닝(panning·카메라의 좌우 이동) 샷은 소화하기 어렵다.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감독이 즐겨 쓰던 롱 테이크(컷을 나누지 않고 오래 찍기)도 무시될 확률이 높다. 5∼8분짜리 영화 절반이 한 장면이라니. 대규모 군중이 등장하는 장면도 기피 대상이다.

○ 섹시 코드가 유리?

길이가 짧은 만큼 논리적인 이야기 전개보다는 극적인 장면, 엉뚱한 상상력, 또는 독특한 캐릭터를 강조하는 방식이 선호될 것이다. 일상생활에서 맞닥뜨리는 부자연스러운 상황이 유발하는 촌철살인(寸鐵殺人)의 유머도 무한한 이야기를 자아낼 수 있다. 휴대전화를 통한 동영상 서비스 중에서 가장 인기 있는 장르가 ‘연예인 누드’라는 것을 감안하면 성적인 코드가 다분히 담긴 것이 유망할 수 있다.

○ 사람과 대사 위주

DMB 단말기는 CD수준의 음질을 갖고 있지만 극장 영화의 5.1 채널 돌비시스템 수준에는 못 미친다. 따라서 화려한 사운드와 음향효과보다는 대사 위주의 스토리 전달에 주안점을 두는 형식이 될 것이다. 이는 사람(배우)이 한 프레임의 대부분을 차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 영화의 퓨전화

DMB 영화는 영화의 지위 추락을 이끌지 모른다. 지하철에서 휴대전화로 게임을 하는 것처럼 짬짬이 소비할 수 있는 대상이 되기 때문. 관객과 쌍방향 소통이 가능하다는 점 때문에 TV홈쇼핑처럼 영화 속에 간접 광고된 상품을 파는 미디어가 될 수도 있다. 반면 아방가르드적 저예산 실험영화의 산실이 될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 긍정적인 측면이다.

(도움말=권칠인 감독(‘싱글즈’), 김소영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 김학순 서강대 영상대학원 교수, 민규동 감독(‘여고괴담 2’), 이수연 감독(‘4인용 식탁’), 조민호 감독(‘정글쥬스’), 한운식 MK픽쳐스 이사, 허재영 TU미디어 과장)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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