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2004 보고서]“美 개입으로 아랍개혁 부진”

  • 입력 2005년 4월 6일 18시 4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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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대(對)아랍 정책이 이 지역 국민들의 자유를 침해하고 인간개발에 장애요인이 되고 있다고 유엔 보고서가 5일 지적했다.

유엔개발계획(UNDP)이 이날 발표한 ‘2004 아랍 인간개발보고서(AHDR)’는 최근 수년간 아랍권 국가들에서는 정치적 민주화를 향한 가시적 발전이 없었으며, 미국의 ‘아랍 민주주의 확산’ 노력이 오히려 권위주의 정권들에 민주화 지연의 구실을 주고 있다고 비판했다.

▽미국은 아랍 민주화의 촉진자?=아랍권 정치전문가 71명이 작성한 247쪽짜리 보고서에서 가장 민감한 부분은 미국의 역할.

보고서는 당초 지난해 가을 발표될 예정이었으나 미국의 반발로 수개월간 지연된 뒤 이날 공개됐다. UNDP는 미국의 입장을 고려해 서문에 ‘보고서 내용은 본 기관의 공식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문구를 이례적으로 삽입했다.


보고서가 비판한 미국의 역할은 이라크 점령, 테러와의 전쟁, 이스라엘 지지정책 등 크게 세 가지.

보고서는 “이라크인들은 사담 후세인 독재체제에서 벗어났지만 곧바로 외국의 점령하에 들어가면서 인간적 고통이 가중됐다”면서 지난해 아부그라이브 포로수용소 사태가 보여주듯이 미군 지배하에서 인간의 기본권이 악화됐다고 지적했다.

또한 미국이 주도하는 테러와의 전쟁과 친(親)이스라엘적 외교정책은 아랍 진보세력들로 하여금 내부적 개혁에 주력하기보다는 대외투쟁에 눈을 돌리도록 했으며, 폭력을 옹호하는 극단세력을 강화시켰다고 보고서는 분석했다.

▽말뿐인 삼권분립=보고서는 아랍국가에서 결혼, 이동, 교육, 재산소유 등 개인적 자유는 향상됐지만 집회, 언론, 정당 결성 등 정치적 자유는 아직도 크게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보고서 작성시점상 올해 이라크, 레바논, 이집트 등에서 가시화된 민주화운동 사례들은 포함되지 않았다.

아랍권에서 정치적 박해와 언론탄압, 고문정치 등이 아직 자행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삼권분립이 확실히 자리를 잡고 있지 못하기 때문. 특히 대통령을 정점으로 정보를 독점하고 있는 행정부는 입법부와 사법부의 견제와 균형 장치를 모두 삼켜버릴 수 있는 ‘블랙홀’이라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보고서는 아랍 국가들이 시급히 내부개혁에 나서지 않는다면 극도의 혼란을 수반하는 ‘사회적 파국’을 맞이하거나 미국과 같은 외부세력의 지배가 장기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보고서는 아랍권에 자유와 민주주의를 확산시키기 위해서는 사법권과 입법권의 독립, 상시적 긴급조치 철폐,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차별 해소가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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