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대통령, 독일 방문때 ‘DJ식 대북 메시지’說

  • 입력 2005년 4월 5일 18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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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의 독일 방문(10∼14일)을 앞두고 방독 기간에 북한을 향해 획기적인 제안을 내놓을 것이라는 ‘제2의 베를린 선언’설(說)이 끈질기게 나돌고 있다.

2000년 4월 김대중(金大中) 전 대통령이 북한에 대규모 사회간접자본 지원을 약속한 ‘베를린 선언’을 통해 2개월 뒤인 6·15남북정상회담의 물꼬를 텄던 것처럼 노 대통령이 파격적인 대북 제안을 던지지 않겠느냐는 관측이다. 방문지인 독일 언론들도 4일 “노 대통령이 독일을 방문할 때 남북관계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는 메시지를 내놓기를 북한이 기대하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청와대는 이 같은 대북 제안 가능성에 일단 부정적이다. 베를린 방문 때 동서 분단의 상징적 장소인 ‘브란덴부르크 문’ 같은 곳에서 모종의 메시지를 내놓는 방안을 깊이 있게 검토한 것은 사실이지만 시기적으로 적절하지 않다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는 게 정부 외교안보라인 핵심 인사들의 설명이다.

정부의 한 고위 인사는 “북핵 6자회담이 답보 상태이고, 북한이 회담 복귀를 위해 저울질하고 있는 상황에서 먼저 선물 보따리를 풀어 놓게 되면 도리어 북한의 오판을 초래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다른 고위 인사도 “노 대통령은 북한이 일방적으로 중단시킨 남북당국자회담이라는 공식 테이블에 나오기 전까지는 비공식 접촉을 하지 말라고 엄명을 내려놓은 상태”라며 “북한도 노 대통령의 방침을 잘 알고 있다”고 전했다.

여기에는 미국, 일본과의 관계가 미묘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점도 작용했다고 한다. 독도 및 역사교과서 문제로 일본과 각을 세우고 있는 상황에서 한발 앞서가는 대북 제안을 내놓으면 대미(對美) 관계까지 악화돼 득보다 실이 더 많다는 판단에서다.

실제 노 대통령은 지난달 20일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과 만났을 때 “미국이 북한과 제대로 된 협상을 한번 해 봐라. 그래도 북한이 태도를 바꾸지 않을 때에는 내가 나서 보겠다”고 강조했다는 후문이다. 아직은 북-미 간 실질적인 협상에 무게를 두고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청와대는 노 대통령의 독일 방문 때 대북 제안보다는 독일과 일본의 과거사 청산 방식의 차이점을 부각시켜 일본을 압박하는 데 비중을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구체적으로는 △빌리 브란트 전 서독 총리가 폴란드 바르샤바의 유대인 학살 추모비 앞에서 무릎을 꿇고 사죄한 일 △폴란드와의 ‘오데르-나이세 국경’을 전격적으로 인정한 일 △독일이 주변국과 공동으로 역사교과서를 만든 일 등 독일의 과거사 청산 방식을 부각시키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김정훈 기자 jng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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