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고승철 칼럼]韓中日, 크게 보고 협력해야

  • 입력 2005년 4월 5일 18시 1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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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큰 흐름을 읽는 사람 곁에 가면 독특한 체취를 느낄 수 있을까. 일선 기자 시절에 이런 어리석은 의문을 품었다. 명사(名士)와 인터뷰할 땐 발언 내용뿐 아니라 말투, 몸짓, 옷차림까지 살폈다. 눈동자의 움직임도 세심히 관찰했다. 상대방의 공력(功力)을 종합적으로 파악하기 위해서다.

특파원으로 유럽에 체류하던 1990년대 초, 유럽은 격변하고 있었다. 독일이 통일되고 동유럽에 민주화 물결이 닥쳤으며 유럽 여러 나라가 정치경제공동체인 유럽연합(EU)을 탄생시켰다. 이 과정에서 국가정상회의가 숱하게 열렸다. 이런 회의 때 기자회견에서 각국 지도자를 가까운 거리에서 살필 수 있었다.

기억에 남는 인물은 프랑수아 미테랑 전 프랑스 대통령과 헬무트 콜 전 독일 총리. 이들은 자주 함께 나타나 다정한 포즈를 취했다. 프랑스 독일 양국이 EU를 이끄는 쌍두마차임을 과시하기 위해서이리라. 이들은 해박한 지식과 풍부한 경험에서 우러나온 정교한 발언을 함은 물론 유머를 잃지 않는 여유를 보임으로써 중량급 인사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정치지도자 독설 도움 안돼▼

EU는 유럽의 고만고만한 나라끼리 뭉쳐 시너지 효과를 내지 않으면 21세기에 미국이나 아시아에 밀릴 것을 우려해 결성된 것.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인 프랑스는 외교력을 바탕으로 독일을 도왔고 독일은 경제력으로 유럽 통합에 기여했다.

무대를 현재의 동북아시아로 옮겨보자. 한국 중국 일본 3국은 티격태격 서로 다투고 있다. 과거사에서 비롯된 구원(舊怨)이 풀리지 않은데다 영토 분쟁 조짐이 있고 이를 부채질하는 민족주의가 꿈틀거리고 있다.

한일 정치지도자들은 대내 여론을 의식한 듯한 독설을 상대국에 퍼부음으로써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스스로 인격을 훼손함은 물론 국격(國格)을 떨어뜨리는 행위이다. 지도자 면면에서 경량급 냄새가 물씬 풍긴다. 미래를 읽을 줄 아는 혜안, 상대를 품는 호연지기(浩然之氣)를 찾기 어렵다.

한중일 3국은 미래의 번영을 위해 긴밀한 협력 관계를 구축해야 한다. 언젠가는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어 더욱 활발한 교역을 해야 하고 나아가서는 경제공동체를 이뤄야 할 때가 올지 모른다. 이를 위해 먼저 상호 신뢰 관계가 형성되고 공동체 의식이 뿌리내려야 한다.

3국의 인구는 15억 명으로 전 세계 인구의 4분의 1가량이다. EU의 4억5000만 명,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지역의 4억2000만 명보다 훨씬 많다. 그만큼 시장이 넓은 것.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한중일 FTA가 시행되면 한국은 성장률이 2.5∼3.1%포인트 오르는 효과를 낼 것”이라 추정한 바 있다. 물론 산업별로는 명암이 엇갈려 중국, 일본에 비해 취약한 부문은 피해를 당할 것이다. 시장개방 시대는, 한국이 원하든 원치 않든, 도도히 다가오고 있는 대세이다.

▼3국정상 만나 문제 풀어야▼

작년 10월 서울에서 열린 ‘한국경제 2만 달러 달성 전략’이란 주제의 심포지엄에서 제시된 4대 전략은 △고등교육 질 개선 △세계 500대 기업 육성 △자기 브랜드 키우기 △서비스산업 육성 등이다. 이들 전략은 한중일의 새로운 분업 체제와 맞물려야 효율성이 더욱 커지는 것으로 분석됐다. 한국은 ‘거대 공장’ 중국과 ‘기술 강국’ 일본 사이에 끼어 있어 흔히 호두까기(nutcracker) 속의 호두 신세라고 한다. 그러나 이런 위기를 잘 극복하면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다.

한중일 3국 정상회담을 열어 우선 감정적인 앙금을 가라앉히고 신뢰 기반을 구축해야 하지 않겠는가. 작지 않은 나라의 지도자들이 단기승부에 집착하는 모습은 아름답지도 않고 지혜롭지도 않다.

고승철 편집국 부국장 che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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