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외국인 몫 1322억 달러’가 던지는 警告

  • 입력 2005년 4월 5일 04시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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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위기 이후 1998년부터 지난해까지 7년간 외국인 투자가들이 국내 증시에서 챙긴 투자이익이 1322억 달러(현재 환율로 약 133조 원)에 이른다고 한다. 같은 기간 우리나라의 경상수지흑자 누계 1301억 달러보다 많다. 외국인 투자수익률은 연평균 41%였다. 그러나 이를 배 아파하고 반감을 갖기 전에 원인을 따져볼 필요가 있다.

돌이켜보면 환란(換亂)의 충격 속에서 국내 투자자들은 심리적 공황상태에 빠졌고 증시를 안정시킬 기력이 없었다. 반면에 선진 투자기법으로 무장한 외국인들은 막대한 자금으로 한국 증시에 파고들었다. 결과적으로 이들의 투자는 한국이 환란에서 벗어나는 데 기여했다. 7년간 외국인들에게 돌아간 1322억 달러는 환란 피해복구비의 적은 부분일 뿐이다.

통한(痛恨)의 환란을 초래한 국내 요인을 되씹어보고, 그때와 닮은 정치경제적 상황들이 바로 지금 나라 안에서 촉발되고 있지 않은지 발밑을 볼 필요가 있다. 환란 이전 우리 정부는 1달러 800원대의 원화(貨)강세 효과로 앞당겨진 1만 달러 국민소득의 허상(虛像)에 사로잡혀 선진국이 다 된 듯이 행세했다. 부자나라클럽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을 서두르고 지나친 자신감으로 외환자유화를 앞당겼다.

몇 달 뒤를 내다보지 못한 무모한 외환 관리로 환란을 맞고서야 소규모 개방경제의 운명이 글로벌 자본의 바람 앞에서는 촛불에 불과했음을 깨달았다. 1997년 초부터라도 “경제 기초가 좋다”고 호언하지 않고 위기관리에 매진했더라면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

오늘의 우리 경제는 민간신용 부실과 기업투자 부진, 저성장 구조의 고착 기미 등 또 다른 구조적 어려움에 처해 있다. 이런 상황임에도 정권 핵심층은 개발시대의 성장 기적을 현재의 경제 실력으로 착각하는지, ‘우리에겐 외교안보의 자주(自主)를 말할 힘이 있다’고 거듭 시위를 하는 형국이다.

환란 당시 한국 경제가 긴급 구제를 받게 된 것은 미국 재무부의 ‘경제논리’가 아닌 국무부와 국방부의 ‘안보논리’ 덕이었다. 지금 한미동맹이 흔들리고 있음을 목격하면서 묻게 된다. 이 같은 ‘안보논리’의 지지 없이도, 정(情)을 뗄 듯이 미국과 자꾸 부딪치고도 우리 경제를 지켜낼 전략이 충분히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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