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투자자 7년간 1322억달러 벌었다

  • 입력 2005년 4월 5일 04시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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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관리 능력과 투자문화의 차이.’

외환위기 이후 7년간 외국인의 한국 상장주식 투자수익률이 내국인보다 월등히 높았던 데 대해 주식 전문가들은 두 가지 이유를 꼽았다.

외환위기 직후 외국인들은 한국 상황을 면밀히 분석하면서 저평가된 주식을 골라 장기 보유한 데 비해 기관투자가를 포함한 한국 투자자는 위험 회피에만 급급했다는 것.

정책적으로 토종 기관투자가를 육성하지 못해 외국인들이 헐값에 국내 우량자산을 매입하도록 방치한 정부의 전략 부재도 한몫했다.

한국금융연구원 최공필(崔公弼) 선임연구위원은 “자본시장이 전면 개방된 경제에서는 상품 수출에만 의존해서는 선진국으로 가기 어렵다”며 “이번 조사 결과를 계기로 금융경쟁력을 강화해야만 선진국이 될 수 있음을 국민 모두가 뼈저리게 느껴야 한다”고 지적했다.

▽외국인 ‘완승’=외국인과 국내 주식형 펀드의 투자수익률을 비교해보면 두 집단의 차이가 확연히 드러난다.

1998∼2004년 외국인의 연간 투자수익률은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주식형 펀드보다 높았다. 외국인의 종목당 투자한도는 1997년 외환위기 때까지만 해도 26%였다. 1997년 말 50%로 늘어난 후 1998년 100%로 자본시장이 전면 개방됐다. 이때부터 외국인의 ‘바이(buy) 코리아’가 시작되면서 수익률이 치솟았다.

1999년 외국인의 투자수익률은 184.7%로 같은 해 주식형 펀드 수익률(62.3%)의 3배에 이르렀다.

시장이 나쁠 때 손실을 최소화하는 능력도 외국인이 국내 투자가보다 뛰어났다. 1999년 말 1,028.07까지 치솟았던 종합주가지수는 벤처 거품이 꺼지면서 2000년 말 504.62로 반 토막이 됐다. 이 기간 국내 주식형 펀드 수익률은 ―39.0%였지만 외국인은 ―34.6%로 손해가 적었다.

2002년 종합주가지수가 9.5% 하락했을 때 외국인은 4.9%의 수익률을 올린 반면 국내 주식형 펀드는 ―0.4%의 수익률을 보였다.

▽수익률 차이 왜 생겼나=외국인은 금융시스템이 불안할 때 위험관리 능력을 발휘하며 ‘대박’을 터뜨렸고 평시에는 장기 투자로 안정적 수익을 올렸다.

외국인이 가장 높은 수익률을 기록한 때는 외환위기 직후인 1998, 1999년. 이 기간 국내 기관투자가와 개인은 주식을 팔아치우기에 바빴다. 정부도 은행과 기업 구조조정에만 신경을 쓰느라 토종자본 육성이나 연기금의 주식투자 확대에 신경을 쓰지 못했다.

반면 외국인은 당시 금융시스템 불안이 감당할 만한 수준이라고 보고 전면 개방된 주식시장에 물밀듯이 들어와 저평가된 주식을 사들였다.

리캐피털 싱가포르법인 이남우(李南雨) 대표는 “외국인의 높은 수익률은 리스크를 감수한 대가라는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투자문화도 수익률 차이에 영향을 미쳤다. 최근 미국계 메릴린치증권 리서치센터장에서 KB자산운용 대표로 자리를 옮긴 이원기(李元基) 사장은 “외국인은 길게, 넓게, 집중적으로 투자한다”고 분석했다.

‘길게’ 하는 투자는 주식을 산 이후 최소 2년 이상 보유한다는 의미. 외국인은 6개월 안팎의 단기 수익률이 부진하더라도 경기와 산업, 기업의 장기 전망이 긍정적이면 주식을 성급하게 처분하지 않았다.

‘넓게’ 하는 투자는 투자하려는 산업의 분석 범위를 세계시장으로 넓혀 보는 것.

‘집중’ 투자는 투자대상 기업 수가 적다는 뜻이다. 외국의 대형 자산운용사들은 펀드 하나를 만들기 위해 세계 8500여 개 기업의 최근 10년간 재무제표를 분석, 1000개의 기업을 가려낸다. 이어 애널리스트가 기업을 방문해 분석한 결과를 토대로 400개 기업을 선별하고 마지막으로 성장잠재력을 평가해 투자 대상 주식 100개를 고른다.

▽희망의 씨앗=최근에는 외국계 자산운용사에서 “외국인과 한국 기관투자가의 실력 차가 줄었다”는 말이 심심치 않게 나온다.

2003년 외국인이 35.8%의 수익률을 냈을 때 국내 주식형 펀드가 35.4%로 비슷한 수익률을 올렸다. 2004년 들어 수익률 차이가 다시 약간 벌어졌지만 외국인의 수익률을 능가하는 국내 펀드들도 많이 나오고 있다.

국내 투자자들도 장기투자의 중요성을 인식하면서 자산운용사들이 나름대로 투자 철학을 갖고 장기투자를 하는 환경이 만들어지고 있다. 장기 투자의 대표적 상품인 적립식 펀드의 규모가 작년 5월부터 급격하게 커져 3조 원에 이른 것이 증거다.

미래에셋자산운용 구재상(具載상) 사장은 “적립식 펀드 규모가 커지면서 국내 투자자의 수익률도 안정적 흐름을 보이고 있다”며 “외국인의 수익률을 능가하는 국내 자산운용사가 많이 나오면 결국 증시의 주도권을 한국인이 다시 찾을 날이 가까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홍수용 기자 legman@donga.com

이병기 기자 eye@donga.com

김창원 기자 chang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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