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안세영]FTA ‘對內협상’도 중요하다

  • 입력 2005년 4월 3일 18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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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난 산고를 치르고 1년 전에 출범한 한국-칠레 자유무역협정(FTA)이 화려한 성적표를 제출했다. 우리 수출이 날개를 달아 칠레에서의 한국 상품 점유율이 7위로 뛰어올랐다. 휴대전화 수출은 무려 226%나 늘어나 점유율이 9.5%에서 18%로 치솟고 특히 한국 상품에 대한 이미지가 한 단계 뛰어올랐다고 한다.

이 정도면 칠레와의 FTA는 누가 뭐래도 성공작이다. 확실히 이번 경험을 통해 우리 모두가 FTA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떨칠 수 있었다. 이에 고무된 통상교섭본부는 앞으로 2007년까지 무려 50여 개국과 동시다발로 FTA를 체결하겠다고 나섰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좀 더 냉정하게 그간의 사회적 비용을 따져봐야 한다.

정부는 농민단체의 반발을 달래기 위해 무려 1조2000억 원이라는 거금을 과수 피해 농가 지원 등을 위한 기금으로 조성했다. 엄청난 개방의 해일이 과수 농가를 덮칠 것이라는 농민단체의 주장에 따라 마련한 기금이다. 그런데 막상 FTA를 발효해 놓고 보니 농산물 수입 증가는 2∼3% 수준에 그쳤다. 이 기금에 들어갈 세금을 내야 할 납세자로선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산고 치른 한-칠레 FTA 성공적▼

이 기금은 성격상 미국의 무역구조조정 지원 제도와 같이 시장개방과 국내 피해 간의 인과관계가 입증된 경우에 한해 지원되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 정부는 개방 여파로 과수 농사를 그만두게 된 것인지를 엄격히 따지질 않고 과수 농가의 폐업을 지원하고 있다. 세계 어느 나라를 봐도 이렇게 엄청난 도덕적 해이를 야기하는 무역보상제도는 없다.

노무현 대통령은 집권 후반기의 통상 어젠다를 선진통상국가의 구현으로 잡았다. 일단 그간의 동북아의 ‘늪’에서 빠져나와 세계로 눈을 돌렸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찬사를 보낼 만하다. 선진통상국가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세계 경제의 중심축인 동아시아-북미-유럽을 함께 묶고 인도 브라질 등 신흥경제권(BRICs)을 연결하는 방대한 FTA 추진 전략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그간의 시행착오를 교훈 삼아 몇 가지 제도 정비부터 해야 한다. 흔히 FTA는 외국과 협상(1단계)만 잘하면 되는 줄 아는데, 사실은 국내 이익집단의 반발과 산업 구조조정까지를 함께 다루어야(2단계) 하는 복잡한 2단계 게임이다. 그런데 지금 통상교섭본부는 1단계 게임에만 매달리고 정작 정치적 부담이 큰 2단계 게임은 산업자원부, 농림부 등에서 산발적으로 하고 있다. 이 같은 엇박자 때문에 한-칠레 FTA의 쓰라린 경험에서 보듯 피해 집단은 거리로 뛰쳐나오고 국민의 혈세는 이를 무마하기 위한 재정으로 낭비되고 있다. 따라서 통상교섭본부를 미 무역대표부(USTR)와 같이 대통령 직속의 통상대표부로 승격시켜 1단계 대외 협상과 2단계 대내 문제를 유기적으로 다루도록 해야 한다.

또한 앞으로는 FTA 로드맵과 산업발전 로드맵이 국민에게 함께 제시돼야 한다. 그래야만 피해 산업의 불안을 덜어 주어 정치적 반발을 줄이는 한편 FTA 협상이 일종의 개방 예시제와 같이 국내산업에 경쟁력 강화 노력에 대한 압력을 가하는 효과까지도 기대할 수 있다.

▼무원칙한 지원은 혈세 낭비▼

마지막으로 지금처럼 대증적(ad hoc)으로 이해집단의 반발을 무마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가칭 ‘무역구조조정 및 경쟁력 강화법’을 만들어 여러 나라와의 FTA에 따른 각종 피해 집단의 정치적 반발과 이에 대한 보상을 이 법의 틀 속에서 단일화할 필요가 있다.

한-칠레 FTA는 선진통상국가로 향해 우리가 내디딘 첫걸음에 불과하다. 효율적 FTA 추진을 위해서는 통상의 대내외 문제를 함께 해결하는 산업형 통상협상체제의 구축이 시급하다.

안세영 서강대 국제대학원장·국제통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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