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을 위한 시장경제강좌]<7>세계로 나가야 산다

  • 입력 2005년 4월 3일 17시 3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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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기업이 세계로 나가려면 우리도 시장을 열어야 한다.” 2일 오후 열린 ‘청소년을 위한 시장경제 강좌’의 7번째 강좌에 참석한 학생들이 이경태 대외경제정책연구원장의 강의를 진지하게 듣고 있다. 안철민 기자
“한국 기업이 세계로 나가려면 우리도 시장을 열어야 한다.” 2일 오후 열린 ‘청소년을 위한 시장경제 강좌’의 7번째 강좌에 참석한 학생들이 이경태 대외경제정책연구원장의 강의를 진지하게 듣고 있다. 안철민 기자
《“한민족 역사상 상대적으로 가장 융성하고 문화, 생활수준이 높았던 때는 통일신라 시대였습니다. 문을 활짝 열어 중국 등과 자유무역을 했기 때문입니다. 역사상 가장 어려웠던 때는 조선시대가 아니었을까요. 문을 꼭꼭 걸어 잠그고 교역을 제한하다가 국운이 쇠해 결국 일본의 식민지가 됐습니다.”

동아일보가 창간 85주년 기념 사업으로 대한상공회의소와 공동으로 기획한 ‘청소년을 위한 시장경제 강좌’의 7번째 강의가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로 동아미디어센터 대강당에서 열렸다. 이날 ‘세계로 나가야 산다’는 주제로 강의를 맡은 이경태(李景台)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원장은 역사적 사례를 들어 시장개방과 자유무역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상품과 서비스의 45%를 수출하는 한국이 선진국에 진입하려면 더 적극적으로 세계로 진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다음은 강의 요지.》

▽한국은 시장개방의 지각생=한국이 세계로 나가려면 다른 나라가 문을 열어야 한다. 다른 나라가 문을 열길 원한다면 우리도 문을 열어야 한다. 혼자만 열면 피해만 볼 수 있지만 함께 열면 모두에게 이익이 생긴다.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세계무역기구(WTO)다. 148개 국가가 가입한 WTO가 중시하는 것은 ‘무차별 원칙’. 나라에 따라 차별하지 않고 똑같이 대우하자는 것이다.

WTO는 많은 나라가 모여 협상하기 때문에 협상 기간만 5∼8년이 걸린다. 이 때문에 마음이 맞는 나라들끼리 모여 먼저 자유무역을 하자는 것이 자유무역협정(FTA)이다.

세계적으로 이미 162개의 FTA가 맺어져 있지만 한국이 FTA를 체결한 나라는 칠레뿐이다. 싱가포르와 협상이 끝났지만 아직 국회가 비준을 하지 않았다. 각각 40여 개국과 FTA를 맺은 칠레, 멕시코 등에 비하면 한국은 FTA에서는 ‘지각생’이자 후진국인 셈이다.

지난해 2월 한국 자동차타이어 업체가 컨테이너 선박에 타이어를 가득 싣고 멕시코로 향하다가 멕시코 정부의 관세인상 조치 발표로 태평양에서 배를 돌려 돌아온 적이 있다. 멕시코와 FTA를 맺은 일본, 미국 등의 제품은 관세율이 0%지만 한국산 타이어는 35%의 높은 관세를 물어야 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다른 나라들이 FTA를 맺는데 한국만 늦어지면 큰 불이익을 받게 된다. 따라서 한국 정부는 최근 동남아국가연합(ASEAN) 일본 호주 등과 ‘동시 다발적’으로 FTA를 추진하고 있다.

지금도 문을 꼭 걸어 잠그고 사는 나라로 북한과 쿠바가 있다. 이들은 아프리카 중남미의 후진국과 함께 세계적으로 가장 못사는 나라다.

▽시장개방, 실(失)보다 득(得)이 많다=시장개방이 어려운 것은 당장 피해를 보는 사람이 생긴다는 점이다. 한국에 중국 등의 값싼 농산물이 들어오면 농민들이 어려워지고 일본과 FTA를 맺으면 부품을 만드는 중소기업들이 피해를 볼 것이다.

그러나 한국과 FTA를 맺은 지 1년이 된 칠레의 사례를 보면 실제 피해는 ‘심리적 피해’에 비해 적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걱정했던 칠레산 포도나 키위의 수입은 그다지 늘지 않았지만 한국산 자동차, 휴대전화, 컬러TV의 수출은 급증했다.

1998년 한국이 일본제 캠코더 수입을 허가했을 때 한국산 제품은 시장에서 모두 사라질 줄 알았다. 하지만 오히려 한국 제품의 품질이 좋아지면서 캠코더 수출이 크게 늘었다.

유통시장을 개방할 때도 한국 유통업체가 모두 무너질 것이라고 걱정했지만 대형할인점 시장에서 이마트와 롯데마트 등 한국 업체가 1, 2위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수입이 늘어 경쟁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 오면 농민도 경쟁력 있게 바뀐다. 쇠고기 시장이 처음 개방됐을 때 한국 축산업의 피해가 예상됐지만 요즘 한우 쇠고기는 수입 쇠고기보다 3배 이상 비싸고 한우를 사육하는 농민은 늘었다.

쌀 시장 개방은 민감한 주제다. 하지만 정부가 농민을 보호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개방의 수준을 높이면서 정부 보조금을 통해 농민도 잘살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미래를 알려면 중국을 보라=지난해 중국의 국내총생산(GDP) 규모는 세계 6위, 무역규모는 미국, 일본에 이어 세계 3위다. 전문가들은 중국이 앞으로 20년 동안 매년 평균 8%씩 성장해 2025년쯤 되면 미국과 비슷한 규모가 될 것으로 전망한다.

수교 이후 10년 만에 중국은 미국, 일본을 제치고 한국의 첫 번째 교역국가가 됐다. 한국 일본 대만 등이 중국에 수출하는 것은 기계 부품 의류원단 등이다. 중국은 이들 재료와 값싼 노동력을 이용한 제품을 미국, 유럽에 파는 식으로 국제분업 질서가 만들어졌다.

한국은 중국에 중화학제품과 부품 등을 수출해 연간 150억 달러 정도 무역흑자를 내고 있다. 일본과의 무역에서 손해 본 부분을 상쇄하고도 남는 규모다. 아직은 한국이 중국과의 교역에서 이익을 내고 있지만 앞으로도 계속 이익을 낼지는 미지수다.

한국은 수십 년에 걸쳐 가발→ 합판→중화학→자동차, 조선→휴대전화, 반도체 등으로 산업수준을 높여 왔다. 하지만 중국은 모든 산업을 동시에 육성하는 ‘풀 세트 이코노미(Full Set Economy)’를 추진하고 있다.

한국에서 사들이던 기계, 부품을 중국이 만들기 시작하면 우리는 팔 것이 없다. ‘신(新)국제분업 질서’를 유지하려면 중국이 따라잡기 힘든 분야에서 먼저 개발하고 생산하는 쪽으로 한국의 산업구조를 발전시켜야 한다.


박중현 기자 sanjuck@donga.com

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김현수 기자 kimhs@donga.com

▼Q:쌀 시장은 보호해야 하는것 아닌가…A:식량 부문도 개방수준 높아져▼

이경태 원장의 강의를 진지하게 경청한 참가 학생들은 강의가 끝난 뒤 시장개방, 자유무역 등에 대한 궁금증을 풀기 위해 다양한 질문을 쏟아냈다.

경기 고양시 일산구 정발중 1학년 이지환 군은 “한국기업이 공장을 중국으로 옮기면 일자리나 세수가 줄 텐데 기업들은 왜 해외로만 나가려 하느냐”고 물었다.

이에 대해 이 원장은 “우려되는 일이지만 이익을 내야 하는 기업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한국에 남아 있으려다가 기업이 경쟁력을 잃고 망하면 결국 더 많은 일자리가 없어진다”면서 “한국은 빠져나가는 산업 대신 중국보다 10배 비싼 임금을 주고도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새로운 산업을 키워내야 한다”고 설명했다.

서울 삼정중 2학년 최현준 양은 “중국 정부가 포스코에 ‘중국에 공장을 지으려면 최첨단 공법을 가져오라’고 요구했다는 동아일보 기사를 봤다”면서 “이런 첨단기술까지 내주면서 중국에 진출해야 하는가”라고 물었다.

이 원장은 “전 세계 개발도상국 투자액의 절반 이상이 중국으로 몰리는 상황에서 중국은 자국의 이익에 유리한 투자를 ‘골라’ 받으려는 것”이라며 “핵심기술을 이전하면서까지 중국 시장에 진출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이득이 될 것인지에 대해 해당기업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답했다.

서울 잠실고 2학년 김태진 군은 “중국은 한국 쌀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철저히 연구하고 품종도 개량한다고 한다”며 “주식인 쌀 시장은 어떻게든 보호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질문했다.

이 원장은 “한국뿐 아니라 유럽 등의 식량 수입국들은 ‘식량 안보’와 농촌 생태계 보호 등 특수성을 들어 농업을 완전히 자유무역에 맡길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국제사회도 이를 어느 정도 인정하고 있다”면서 “그러나 식량 부문에서도 개방의 수준은 더욱 높아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덧붙였다.

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박중현 기자 sanju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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