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모녀 같은 고부’ 공모전 당선 커플의 사랑얘기

  • 입력 2005년 4월 3일 17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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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어트는 고부 간에도 화젯거리다. 윤은숙 씨는 “우리 며느리 다 좋은데, 잘 먹지 않는 것이 흠”이라며 며느리 김안나 씨에게 업혔다(오른쪽). 문영주 씨는 “임신 때마다 밥이다 간식이다 챙겨주시는 바람에 아직도 10kg이 덜 빠졌다”며 시어머니 김춘태 씨를 업었다. 김미옥 기자
다이어트는 고부 간에도 화젯거리다. 윤은숙 씨는 “우리 며느리 다 좋은데, 잘 먹지 않는 것이 흠”이라며 며느리 김안나 씨에게 업혔다(오른쪽). 문영주 씨는 “임신 때마다 밥이다 간식이다 챙겨주시는 바람에 아직도 10kg이 덜 빠졌다”며 시어머니 김춘태 씨를 업었다. 김미옥 기자
시어머니는 엄마이자 딸이다. 며느리도 최소한 누군가의 딸이다. 그러나 시어머니와 며느리는 ‘엄마와 딸’이 될 수 없다. 아들 남편이 없었다면 남남이었겠지만 ‘그’가 있었기에 오늘도 팔자를 탓할 수밖에.

그러나 최근 두부 제조업체 두부종가가 개최한 ‘우리 어머니, 우리 며느리’ 공모전에 당선된 고부들은 달랐다. 오후 늦게 자리를 같이한 두 쌍의 고부는 ‘엄마와 딸’이 될 수 있음을 증명하려는 듯 저녁식사까지 함께하며 ‘우리 어머니, 우리 며느리’ 자랑을 늘어놓았다.

김안나(28·서울 양천구 신월동)씨는 광주에 사는 시어머니 윤은숙(55) 씨의 깐깐한 인상에 적잖이 걱정했다고 한다. 당신의 아들(30)이 아직 변변한 직장이 없다며 결혼까지 반대하는 것이 아닌가.

윤 씨는 “그래도 아들 이기는 엄마는 없다”며 끼어든다. 결혼 직후 아들은 경찰공무원 공부를 시작했고 서울을 떠나 광주로 이사까지 왔다.

“경제적인 것도 그렇지만 임신까지 해 힘들었어요. 임신 6개월부터 조산기가 있어 병원에 입원했지요. 두 달이 넘게 입원해 있는 동안 시어머니는 하루도 빠짐없이 절 간호해주셨어요. 남편은 합격해 경찰학교에 들어가서 옆에 없었거든요.”

편식이 심한 김 씨를 위해 윤 씨는 밥과 반찬 간식을 해 날랐다. 대신 자신은 병원 밥을 먹었다. 천둥번개가 치던 날 병원에서 저녁을 먹고 돌아간 윤 씨는 밤늦게 다시 병원을 찾았다. 겁 많은 며느리가 혼자 자는 게 걱정돼 잠을 잘 수 없었다며.

김 씨와 윤 씨는 외모도 닮아 함께 백화점에 가면 모녀냐는 얘기를 많이 듣는다. 김 씨는 “다시 서울로 올라온 뒤에도 하루 2, 3번은 전화한다”며 “처음엔 할 말이 없었지만 자꾸 전화하다보니 시시콜콜 할 말이 더 많아진다”고 한다.

문영주(38·서울 동작구 노량진동)씨 역시 13년 전 시어머니 김춘태(74·경기 안양시) 씨를 처음 만났을 때 ‘전형적인 시어머니상’이라 무서웠다고 한다. 그러나 남대문 지하수입상가에서 액세서리 가게를 했던 김씨는 ‘키 크고 눈 큰 며느리’에 반해 준비해간 진주목걸이를 걸어주었다.

“맘에 안 들었으면 목걸이를 주지 않았을 것”이라는 김 씨는 남편 없이 혼자 아들(43·회사원)을 키웠다. 43년 전 인연을 맺었던 남편이 6·25전쟁 과정에서 헤어졌던 자신의 원래 아내와 가족을 만나게 되자 자신이 낳은 아들만 데리고 나왔던 것.

유방암 말기라는 진단을 받은 와중에서 이미 결혼날짜가 잡혀있던 아들 내외는 결혼을 강행했다. 문 씨는 “시어머니를 모시겠다고 생각했는데 신혼여행에서 돌아와 보니 이미 따로 아파트를 얻어 이사를 가신 뒤였다”고 회상했다. 다행히 유방암 수술은 성공적이었고 지금은 일요일마다 교회에서 아들 내외와 손자들을 만난다.

“아이들끼리 살아야 재미있지요. 우리 며느리 상냥하고 속이 깊어요.”(김 씨)

“12세 8세 두 아이가 일요일을 기다려요. 어머니께서 장난감이며 먹을 것을 잔뜩 사가지고 오시는 날이니까요.”(문 씨)

공모전에 함께 당선된 고은정(30·서울 강남구 개포동) 씨는 노점상을 하는 시어머니 천선자(61) 씨의 저녁식사를 배달하느라 이날 참석하지 못했다.

며느리 고 씨는 1000원에 7개 하는 만두를 파는 천 씨와 길거리에서 함께 점심 저녁을 먹는다.

고 씨가 노점상 과부의 아들과 결혼한다고 했을 때 친정에서 반대한 것은 물론이었다. 가난 때문에 결혼반지도 시어머니가 끼던 은반지를 물려받고 신혼여행도 가지 않는다는 소식에 친정부모는 결혼식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결혼식 내내 저보다 더 많은 눈물을 흘리는 시어머니의 모습에 불효녀는 될지 몰라도 또 한분의 어머니를 얻는구나 생각했습니다.’

천 씨는 가끔 “친정에 전해드려라”하면서 만두를 싼다. 고 씨는 자신의 결혼을 반대했던 친지의 걱정을 덜 수 있는 방법은 시어머니의 사랑을 받는 길이라고 다짐한다.

고 씨는 시간이 날 때 만두도 팔고 배달도 대신한다. 구청단속반이나 주위상인들의 신고로 리어카를 떼어가고 벌금이 나와 구청직원에게 눈물 흘리며 호소하는 모습을 볼 때 자신은 아무 도움이 안돼 안타깝기만 하다.

그래도 시어머니에게 잊지 않고 드리는 ‘보약’이 있다. 시어머니 도시락에 꼭 볼펜으로 써 넣는 ‘어머니, 힘 내세요, 제가 있잖아요!’.

이날 며느리들은 “시어머니를 친정어머니처럼 생각하라”고 했고 시어머니들은 “예전의 시어머니 노릇 포기하고 똑똑한 요즘 며느리 말에 따르라”고 조언했다.

이들은 다른 두 쌍의 고부와 함께 5일 2박 3일 제주도 여행을 떠난다.

김진경 기자 kjk9@donga.com

▼며느리들이 전하는 시어머니랑 사이좋게 지내는 법▼

“전화를 자주 하라. 시어머니와 말을 많이 하면 할수록 할 말은 많아진다.”(김안나)

“시어머니 말을 잔소리라고 생각하지 말고 ‘잘하라’고 한 말이라며 새겨들어라.”(문영주)

“애정을 표현하라.”(고은정)

“전화는 시어머니에게 ‘보약’이다. 그리고 시어머니 앞에서, 또 다른 사람 앞에서 틈날 때마다 시어머니를 자랑하라.”(정동임·51)

“밝은 얼굴을 하라. 그래서 시어머니에게 자랑거리를 하나 더 만들어드려라.”(안정미·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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