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경기]피플&피플즈/해상교통센터 ‘女관제사 3총사’

  • 입력 2005년 4월 1일 21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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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선박을 타고 망망대해를 항해하는 선장이 무전을 통해 들려오는 여성 관제사의 침착하면서도 친절한 뱃길 안내를 받는다면 얼마나 반가울까.

십중팔구는 고마움의 표시로 ‘생∼큐’를 연발할 것이다.

요즘 인천항을 입출항 하는 국제여객선 등 각종 선박의 선장들은 이처럼 친절하고 섬세한뱃길 안내 서비스를 한껏 누리고 있다. 인천지방해양수산청이 전국 항만 중 유일하게 여성관제사 3명을 해상교통관제센터에 배치했기 때문.

주인공은 고애순(54), 이순호(30), 이수진(30) 관제사.

1일 인천 중구 항동 인천해양경찰서 옆에 위치한 해상교통관제센터.

큰 언니격인 고 씨가 8492t급 화물선인 오리엔탈 호 선장과 교신을 하고 있다.

수로, 부표, 풍향, 암초, 조류 상황을 알려주는 대형스크린을 응시하는 고 씨의 얼굴엔 긴장감이 느껴졌다.

“‘대기 묘지’(待機 錨地·선박이 항만에 들어오기 전 닻을 내린채 대기하는 장소)에 어선들이 그물을 쳐 놓아 배를 댈 곳이 마땅치 않네요.”(선장)

“해양 경찰에 협조를 얻어 단속할께요. 그래도 대기 묘지 밖에 정박하면 안전사고의 위험이 있으니 배를 대기 묘지 안쪽으로 정박하세요.”(고 관제사)

“노력하겠습니다. Thank you!”(선장)

고 관제사는 대학을 졸업한 해인 1973년 2월 당시 인천지방해운국 항무통신실 소속 관제사로 인천항과 인연을 맺었다.

인천항을 오가는 수로는 동수로(입항전용)와 서수로(출항전용)로 나뉜다. 이들 수로의 가운데에 위치한 중수로는 소형선박이 다니는 길.

인천항만은 수로의 굴곡이 심하고 조수간만의 차가 심해 대형 선박도 항로를 이탈하기 일쑤다. 여기에 강한 해풍(海風)과 잘 보이지 않는 암초가 곳곳에 도사리고 있어 관제사들은 늘 긴장을 늦출 수 없다. 항상 스크린에 눈을 떼지 못한 채 근무를 하면서 수백 대의 선박과 교신을 나눠야 한다.

지난해 여름에는 고 관제사의 순간적인 기지로 대형사고의 위기를 넘기기도 했다.

바닷모래 채취선이 항로를 이탈해 암초를 향해 돌진하고 있었던 것. 고 관제사가 무전기를 통해 다급한 상황을 알렸으나 응답이 없었다. 고 씨는 급히 모래채취업체로 전화를 걸어 선장의 휴대전화 번호를 알아낸 뒤 전화를 걸었다. 벨 소리에 놀란 선장은 황급히 뱃길을 돌려 대형사고의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대학에서 정보통신공학을 전공한 뒤 관제사 자격시험에 합격, 2001년부터 관제사의 길을 걷고 있는 이순호 씨는 항로를 자주 벗어나는 중국 선박 때문에 골치가 아프지만 그래도 “관제사가 천직(天職)인 것 같다”고 말했다.

해양대 출신으로 3급 항해사인 이수진 씨는 10만t급 화물선을 2년간 탄 경력을 인정받아 해양수산부에 특채돼 지난해부터 관제사로 일하고 있다.

그는 “항로 뿐 아니라 곳곳에 위치한 암초의 이름을 모두 기억하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이젠 자신감이 생겼고,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해상교통관제센터 서종근(53) 팀장은 “3명의 관제사 모두 냉철한 판단력과 섬세함, 책임감으로 맡은 일을 충실히 해 인천항을 빛내주는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고 말했다.

차준호 기자 run-jun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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