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맘모스 편의점’… 편의점 속 세상만사

  • 입력 2005년 4월 1일 19시 1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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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모스 편의점/구광본 지음/320쪽·8500원·돋음새김

패스트푸드로 1분 안에 배를 채울 수 있고 언제든지 현금을 인출할 수 있으며 전국 어디든지 일일 택배가 가능한 장소는? 바로 24시간 편의점이다. 편의점은 현대인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대부분의 일을 채워 줄 수 있는 세상의 축소판이다. 별난 점이 있다면 벽에 설치된 폐쇄회로(CC)TV가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고 있다는 것이다.

표제작 ‘맘모스 편의점’은 인간처럼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게 된 CCTV의 눈을 통해 24시간 편의점이라는 함축된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려낸다. 자동설비화로 명예퇴직 당한 이, 신용불량자 등 현실 부적격자로 낙인찍혀 버린 이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여기서 CCTV는 하나의 인간이다. CCTV는 “나는 하나의 눈이다. 나는 보고, 그러므로 존재한다”며 자신의 탄생을 규정한다. 주인공인 ‘나’, 즉 CCTV는 하나의 인격체로 아르바이트생 은진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낀다. 하지만 은진은 야간 담당 아르바이트생으로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상수와의 연애가 파경에 이르자 편의점 금전등록기를 털고 사라져 버린다. 이를 목격한 CCTV는 그 장면을 기록해 은진의 범죄를 알린다. 사랑하는 사람을 고발하는 과정에서 CCTV는 삶의 고뇌에 눈을 뜬다.

그러나 CCTV는 보고 생각할 수만 있지 말할 수도, 움직일 수도 없다. 이는 현대사회에 함몰돼 자신의 정체성을 잃고 매사에 한발 뒤로 물러나 ‘사유’만 하는 무기력한 현대인을 의미한다.

작가 구광본 씨는 이 소설집에서 ‘삶의 본질’이라는 무거운 화두로 현대인의 정체성을 끊임없이 탐구하고 있다.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는 듯한 편의점이지만, 그 속에 있는 사람들은 모든 것을 이루지도 못하고 행복하지도 않다. 이외에도 CCTV 연작 ‘사건의 핵심’에서는 조그만 사무실에 있는 CCTV의 눈으로 인간 내면의 부정과 배신을 심층적으로 파헤친다. ‘섬’, ‘지하미사’와 같은 초기작에서 ‘미스 리는 미스 리다’, ‘별로 변한 것 없어요’ 등 최근작까지 삶의 본질을 끊임없이 탐구하려는 작가의 관점이 소설집에 내내 이어진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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