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청소부 아버지와 앵커맨 아들’

  • 입력 2005년 4월 1일 18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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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NBC TV ‘미트 더 프레스’의 메인 앵커 팀 루서트(오른쪽)와 아버지 ‘빅 러스’. 루서트는 아버지에게서 배운 삶의 지혜가 자신의 생활과 일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말한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미국 NBC TV ‘미트 더 프레스’의 메인 앵커 팀 루서트(오른쪽)와 아버지 ‘빅 러스’. 루서트는 아버지에게서 배운 삶의 지혜가 자신의 생활과 일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말한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청소부 아버지와 앵커맨 아들/팀 루서트 지음·김상현 김영신 옮김/360쪽·1만2000원·동아일보사

저자는 미국 4대 지상파로 손꼽히는 NBC TV의 간판 시사프로그램 ‘미트 더 프레스(Meet The Press)’의 메인 앵커다. 1991년 말부터 13년간 그는 이 프로그램에서 교황을 비롯해 세계 각국의 지도자와 톱스타들을 인터뷰해 왔다. ‘월 스트리트 저널’은 ‘미트 더 프레스’를 ‘정치 관련 프로그램의 최고 자산’으로 평가했고, ‘리더스 다이제스트’는 2004년 팀 루서트를 최고의 인터뷰어로 선정한 바 있다.

그런 그는 인생의 스승을 단 한 사람 꼽으라면 주저 없이 아버지 ‘빅 러스’(애칭)를 택한다. 그는 “인생의 고비마다 아버지의 가르침이 떠올랐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가르침이 거창했던 게 아니다. 아버지와 함께 일을 하거나 밥을 먹으면서 나눈 이야기들이다. 더구나 아버지는 대학도 나오지 못했다.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죽을 고비를 넘겼던 그는 귀향해서는 가정을 위해 하루에 두 가지 일을 했다. 낮에는 환경미화원으로 일했고, 밤에는 신문배달 트럭을 몰았다. 그러면서도 아버지는 청소부 일을 부끄럽게 여기지도 않았고, 가정생활에도 흐트러짐이 없었다.

저자는 학교나 직업을 선택할 때, 인터뷰 대상이나 주제를 정할 때도 아버지를 떠올렸다. 그는 1984년 NBC ‘투데이 쇼’에 합류하자마자 폴란드 출신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를 인터뷰하는 일을 맡았다. 섭외부터 캄캄했던 그는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버지는 “편지를 폴란드어로 쓰는 게 어떠냐.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할 때는 그 사람들 말로 해라. 그건 네 존경심을 보여주는 거야”라고 말했다. 루서트는 그 가르침을 따랐고, 교황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1991년 말 ‘미트 더 프레스’의 앵커를 맡은 이래 아버지는 ‘보통 사람’의 시각에서 가장 매서운 추궁자이자 강력한 조언자가 됐다. 루서트는 2001년 9·11테러 발생 닷새 뒤 딕 체니 부통령을 인터뷰하기 전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버지는 “사람들은 그날 어떤 결정들이 내려졌는지 알고 싶어 해. 역사의 중대한 순간을 포착할 수 있는 기회이지”라고 말했다.

루서트는 “그날 일어난 일을 주목하라는 아버지의 말이 아니었다면 부시 행정부가 테러리즘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를 집중적으로 물었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뿐만 아니다. 아버지의 말은 평범했지만, 루서트에게는 큰 가르침으로 각인됐다.

“내가 옳지 않은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어떻게 아이들에게 옳은 일을 하라고 말할 수 있겠니.” “좋은 사람이나 싸가지 없는 놈이 되는 데 드는 시간은 똑같다.”

저자는 아버지 외에도 어릴 적 이웃집 어른 등 ‘아버지 세대’로부터 큰 빚을 졌다는 사실도 함께 털어놓고 있다. 이처럼 아버지 세대에 헌사를 보내는 대목에서 이 책의 가치는 더욱 빛난다. 저자는 서문에서 “우리가 누구든, 무엇을 이루었든, 우리는 그들(아버지 세대)의 어깨 위에 서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책을 읽다가 여러 대목에서 한국의 현실이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원제 ‘Big Russ & Me’(2004년).

허 엽 기자 h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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