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흥행의 재구성’…할리우드의 이면

  • 입력 2005년 4월 1일 18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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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 차례의 기획회의와 시사회 뒤의 덧손질, 대대적인 홍보전을 펼친 뒤에도 영화의 성공 여부는 아무도 모른다. 이 때문에 할리우드에서도 영화의 흥행 예측은 영화 못지 않게 흥미롭다. 위 삽화는 영화를 소재로 한 정승혜씨의 ‘무비카툰’
수십 차례의 기획회의와 시사회 뒤의 덧손질, 대대적인 홍보전을 펼친 뒤에도 영화의 성공 여부는 아무도 모른다. 이 때문에 할리우드에서도 영화의 흥행 예측은 영화 못지 않게 흥미롭다. 위 삽화는 영화를 소재로 한 정승혜씨의 ‘무비카툰’

◇흥행의 재구성/김희경 지음/272쪽·9800원·지안

“누가 사 줄 것이라는 확신도 없이, 수백만 달러를 투자해 무에서 유를 창조해내는 사례는 영화 이외의 어떤 사업 분야에서도 찾을 수 없다.”

미국 경제학자 해럴드 보겔의 이 말대로 영화란 불확실성의 사업이다. 똑같이 한 줄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하지만 누구는 대박을 터뜨리고 누구는 ‘망한다’.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이 거대산업에서 최대의 수익을 끌어내기 위해 할리우드에서는 어떤 전략들이 동원될까.

● 아이디어의 숲을 뒤져라

감독의 역량도, 배우의 열연도 ‘좋은 소재’가 없으면 헛일. 넘치는 기획 아이디어 속에서 황금을 찾기 위해 골머리를 앓지만 오판도 부지기수다. ‘포레스트 검프’는 워너브러더스사가 10년이나 다듬었으나 빛을 보지 못하다가 컬럼비아사로 넘어가고 나서야 빛을 봤다. ‘위대한 개츠비’는 네 차례나 영화화됐지만 모두 흥행에 실패했다.

주가 하락을 두려워한 탓에 메이저(대규모) 영화사들은 갈수록 안전한 아이디어를 선호한다. 이야깃거리를 팔기 위한 프레젠테이션에서도 ‘무엇과 닮았는가’가 중시된다. 예를 들어 ‘인디펜던스 데이’는 ‘스타워즈에 V(브이)를 합친 것’이라고 설명해야 먹히는 식이다.

오리지널 스토리의 쇠퇴도 눈에 띄는 추세다. 이미 책 TV드라마 게임 등으로 익숙한 소재이거나 전편이 있는 영화, 즉 ‘프랜차이즈 영화’가 봇물을 이룬다. 1999년 이후 연도별 흥행 1위는 ‘해리 포터’ ‘스파이더맨’ ‘슈렉’ 등 모두 프랜차이즈 영화가 차지했다.

● 개봉 전략, ‘펴지지 않으면 죽는다’

블록버스터 영화는 이제 한 번 보고 버려지는 ‘일회용 용기’다. 초반 입장객 수로 영화의 재미를 판단하려는 관객들의 경향 때문에 가능한 한 많은 상영관을 잡고 일거에 화제를 쏟아내는 ‘와이드 릴리스’가 대세다. 대도시에서 먼저 개봉해 호응을 얻은 뒤 상영관을 늘려가는 ‘플랫포밍’ 전략은 사라져간다.

개봉 첫 주 수입이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1997년 34%에서 2002년에는 46%로 늘어났다. 낙하산처럼 ‘떨어뜨리자마자 펴져야’ 살아남는 것이다.

블록버스터에 다른 영화를 맞세우는 ‘카운터 프로그래밍’도 옛말이 됐다. 복합상영관들이 20분마다 같은 영화를 틀어대니 ‘기다리지 말고 딴 거 보자’는 요구가 사라진 탓이다.

● 히트라는 환상의 이면

메이저 영화사들은 점점 더 ‘거간꾼’을 닮아간다. 튀는 영화를 만드는 소규모 독립영화사들을 인수해 거느리고 공동 투자로 위험을 분산시킨다. 스스로 제작하는 영화는 절반 이하이며 나머지는 공동제작이나 마케팅, 배급만 담당한다.

성공도 점차 모방된다. ‘글래디에이터’의 성공은 ‘트로이’와 ‘알렉산더’의 과감한 투자를 끌어냈다. 실패의 위험이 적은 가족영화는 날이 갈수록 성장세다. 픽사(Pixar)사는 디테일과 스토리의 완성도에 강박적으로 집착한 덕에 전 작품 성공의 신화를 이룰 수 있었다.

저자는 1998년 초 흥행작 ‘타이타닉’의 개봉과 함께 영화담당 기자가 됐고, 다음해 ‘쉬리’의 200만 명 관객 돌파와 함께 시작된 한국영화의 급성장을 지켜봤다.

2001년 미국 로욜라 메리마운트대 경영대학원 재학 중 수많은 영화 관계자들을 인터뷰하며 할리우드 비즈니스를 들여다본 경험을 토대로 이 책을 썼다.

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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