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세상/구영모]안락사와 호스피스

  • 입력 2005년 4월 1일 18시 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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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인간 상태에서 15년을 지내 온 여성 테리 샤이보(41)의 급식을 중단하라는 미국 연방법원의 결정이 지구촌의 화제다. 샤이보의 급식 튜브를 제거하려는 남편과 이를 막으려는 친정 부모의 법정 다툼 속에서 2001년과 2003년에도 그의 튜브는 제거된 적이 있었다. 이번에 세 번째로 튜브가 제거된 샤이보는 탈수와 영양실조로 결국 31일 사망했다.

샤이보의 사례는 1975년 카렌 퀸란 사건, 1990년 낸시 크루잔 사건과 함께 안락사에 대한 미국 법원의 고전적 판결로 기록될 전망이다.

어원적으로 안락사는 수월한 죽음을 의미하지만 오늘날에는 치유될 수 없는 질병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의 고통을 덜어 주기 위해 환자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행위를 뜻한다. 여기서 환자의 죽음이 환자에게 반드시 이익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가령 환자가 약물로 고통 없이 사망했다고 치자. 만약 그 죽임이 환자의 이익이 아닌 가족이나 사회의 이익을 위한 것이었다면 그것은 안락사가 아니다. 살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1997년 보라매병원 사건이 발생했다. 이 병원 응급실에 실려 온 환자를 진료한 결과 치료를 중단하면 사망할 것을 알면서도 보호자의 요청에 따라 퇴원시킨 의사에게 대법원은 2004년 6월 마침내 살인방조죄를 인정했다. 7년을 끌어 온 지루한 재판 과정에서 사망 직전의 환자에 대한 연명치료가 과연 ‘의미 있는 삶의 연장’인지 ‘고통받는 기간의 연장’인지에 대한 논쟁이 간헐적으로 벌어졌다.

안락사에 대한 사회적 논쟁은 앞으로도 상당 기간 결론이 내려지지 못한 채 지속될 것이다. 세계에서 안락사 문제가 처음 대두된 미국조차 30여 년간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필자는 안락사에 대한 논의가 이제 막 이뤄지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선진국의 길을 좇기보다 우리에게 좀 더 시급한 문제에 사회적 관심을 돌리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바로 호스피스(hospice)다.

호스피스란 죽음을 앞둔 말기 환자가 여생 동안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삶의 질을 유지할 수 있도록 신체적 정서적 사회적 영적인 돌봄을 통해 삶의 마지막 순간을 평화롭게 맞이할 수 있도록 하는 총체적인 접근법이다.

호스피스는 말기환자가 품위 있게 죽을 권리와 환자의 삶의 질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안락사와 유사해 보이기도 하지만, 환자의 죽음을 결코 의도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안락사와는 분명히 다르다.

호스피스 제도는 의료 재정을 운용하는 정부에도 유리하다. 호스피스는 적극적인 치료 대신 주로 통증 관리를 하므로 정부가 부족한 의료재정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데 도움이 된다. 우리나라 암 환자의 사망 직전 1개월간 진료비가 1년간 전체 진료비의 31%에 이를 정도로 사망 직전에 진료가 집중되고 있는 의료 현실을 감안할 때, 보건복지부가 호스피스의 건강보험급여를 확대해 가고 있는 것은 옳은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안락사를 둘러싼 서구의 논쟁이 앞으로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분명하지 않다. 삶의 질을 중시하는 선진국의 예를 따라간다면 우리 역시 안락사에 대한 찬반 대립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런 사태에 대비해 이제는 가정과 학교, 공공매체에서 올바른 죽음을 준비하는 논의와 교육이 시작돼야 하지 않을까.

구영모 울산대 의대 교수·생명의료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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