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문예]단편소설 당선작/독<3>

  • 입력 2003년 12월 31일 16시 1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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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황주리
그림 황주리
그들이 열어주는 대문으로 다시 들어간다. 장독대를 지난다. 주인 할아버지 내외와 젊은 아들 부부, 조그마한 아이들 셋이 마당에 서서 나를 본다. 미안하게 되었네 그랴, 혀를 차는 주인 할머니의 목소리가 뒤따른다. 담벼락을 타고 작은 창문 안으로 발을 들이민다. 싱크대가 기우뚱한다. 중심을 잃고 방바닥으로 쓰러진다. 담벼락에 긁힌 손바닥과 무릎의 살이 찢어져 피가 흐른다. 아프지도 않다. 바닥에 물이 뚝뚝 떨어진다. 화장실과 방 사이에 거울이 걸려 있다. 거울을 보며 흠칫한다. 젖은 머리카락이 헝클어지고 군데군데 피 묻은 여자가 거울 속에서 넋을 놓고 앉아 있다. 여자가 손을 뻗어 수건을 잡아당긴다. 머리카락과 팔 다리를 오래오래 닦는다. 거울 속에 있는 여자를 한동안 바라본다. 고개를 가로젓는다. 자두 밭에 가면, 자두 밭에 가아면, 아이들이 부르는 노랫소리가 빗속에서 요란하다. 물기가 흥건한 옷을 쥐어짜다가 퍼뜩 슈퍼마켓 전화번호가 생각난다. 옷을 걷어 부치고 팔 안쪽을 들여다본다. 뭉툭하게 적힌 적갈색 번호들이 뭉개져 있다. 몇 번이었더라. 흐릿한 숫자와 기억을 헤집으며 수화기를 집어 든다. 서너 번의 오류 끝에 가게의 소음이 전해진다. 구인광고를 보았다고 말하자 분주한 목소리는 누군가를 찾더니 한 시간 후에 다시 걸든지 직접 방문해 달라고 한다. 벽에 걸린 달력의 빈 여백에 슈퍼마켓 전화번호를 적어둔다.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는다.

오디오의 버튼을 누른다. 며칠동안 반복되던 CD가 다시 돌아간다. 춤을 추고 싶었다, 화려한 옷을 입고 점잖은 체하다가 어둠 속에서 말없이 부딪치는 눈빛에 춤추고 싶다, 고 가수가 중얼거린다. 비음이 섞인 낮은 목소리가 유혹적이다. 스피커 구멍에서 새어나오는 노랫소리가 기타 선율을 타고 눅눅한 좁은 집안을 자박자박 걸어 다닌다. 볼륨을 높이고 부엌으로 간다. 아귀의 크고 넓적한 몸이 도마 위에 있다. 무심코 쇠 젓가락으로 입술 천장을 들어 올린다. 입이 워낙 커서 쉽지 않다. 한가운데 있는 커다란 이빨을 집어 입을 벌린다. 아귀의 넓적한 입이 옆으로 위로 사정없이 벌어진다. 분홍빛 속살이 드러난다. 남편의 절친했던 동료, 강 기사의 운전석이 생각난다. 분홍색 등받이와 방석을 보고 십대 소녀 취향이냐면서 남편과 나는 그를 놀렸었다. 전철역 앞에서 차를 세우고 대기 중이던 그는 잠깐만 쉬어야겠다면서 고개를 뒤로 젖히고 운전석에 앉은 채 다시는 깨어나지 못했다. 그의 나이 마흔하나였다. 뻥 뚫린 목구멍 너머에서 남편의 긴 한숨이 새어나오는 것만 같다. 톱니 같은 이빨은 입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윗몸 중간과 옆, 목구멍 근처에도 이빨이 숭숭 박혀 있다. 칼을 집어 든다. 입술 끝에 있는 독을 먼저 잘라내십쇼. 시장 남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아차, 가위로 자르라고 했지. 싱크대 서랍을 뒤져 주방용 가위를 집어 든다. 한 손에는 칼을, 한 손에는 가위를 쥔다. 춤을 추고 싶다, 고 중얼거리던 가수는 후렴구에 이르자 흐느끼듯 격렬하게 웃어댄다. 그 소리가 아귀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것만 같아서 나도 모르게 칼끝으로 아귀의 입을 치켜든다. 집 안에 웃음소리가 가득 찬다. 방으로 들어가 리모컨 버튼을 눌러댄다. 내린다는 게 잘못 눌러 볼륨이 사정없이 올라간다. 음량이 표시된 칸에 블록이 쌓인다. 한 칸, 두 칸, 다섯 칸, 열 칸. 남자 가수의 목소리가 찢어진다. 드럼과 기타와 피아노 소리가 거실 벽을 두드려 댄다. 서랍장 위에 있는 오디오 파워 버튼을 눌러버린다. 일순 집안이 고요하다. 낯선 정적이 차곡차곡 쌓인다. 주위를 둘러본다. 검은 복면을 하고 칼을 들이댄 도둑이 성큼 들어선 것만큼이나 이 조용함이 느닷없고 두렵다. 습기 먹은 집안에 비린내가 가득하다.

엄마아아, 아이의 목소리가 들린다. 정신을 추스르고 문을 열어준다. 아이에게서 매콤한 양념 냄새가 난다. 무얼 먹었는지 입가가 지저분하다. 엄마, 생일파티 다 끝났어. 햄버거랑 치킨이랑 피자를 실컷 먹었더니 아, 배부르다. 아이의 배가 불룩하다. 아이는 조르르 부엌으로 달려간다. 맛있는 거 있나 볼까, 하면서 냉장고를 열고 닫는다. 호들갑스런 목소리가 이어진다. 엄마, 이거 뭐야? 되게 웃기게 생겼다. 어디…… 아야, 아이의 비명을 듣고 부엌으로 달려간다. 도마 위에 있는 아귀를 건드리다 찔린 모양이다. 아이의 검지손가락 끝에 핏방울이 맺힌다. 피를 보자 아이는 몸을 떨며 울기 시작한다. 아이를 진정시킨다. 아이는 금방 상처를 잊고 거울 앞에서 아귀 흉내를 낸다. 입술 끝을 손가락으로 넓게 벌린다. 촘촘한 이빨을 드러낸다. 만화영화에서나 들릴 법한 목소리가 아이의 입에서 흘러나온다. 나는 아귀다, 맥도널드 햄버거와 케이에프씨 닭고기와 미스터 피자를 좋아하는 아귀다. 김치 같은 것은 절대로 안 먹는다. 보기 싫으니 관두라고 소리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현관문 앞에 서 있다가 들어서는 제 아빠에게도 아귀 흉내를 낸다. 거세게 내리던 비가 그쳐 있다.

저녁을 먹으면서도 남편은 텔레비전에서 눈을 떼지 않는다. 아예 리모컨을 숟가락과 국그릇 사이에 올려놓고 수시로 눌러댄다. 뚜렷한 채널 없이 이리저리 리모컨을 누른다. 화면의 장면들이 순간순간 바뀐다. 검은 세단에서 개 한 마리가 풀쩍 내려오는 광고, 입가에 마스크를 쓰고 시위하는 군중들, 활짝 웃는 얼굴로 웨딩드레스를 펼치며 빙그르르 돌고 있는 드라마 속 여주인공, 상장을 입힌 검은 사진을 붙들고 오열하는 장례 행렬, 푸른 하늘을 날고 있는 비행기, 폭탄이 터지고 건물이 내려앉는 해외 통신. 촛불을 들고서 거리에 모인 군중들. 느닷없이 끊어지고 아무 연관 없이 이어지는 소리가 한동안 계속된다. 리모컨을 쥔 남편의 손동작이 피곤하고 무료해 보인다. 차라리 텔레비전을 끄지 그래! 나는 한마디한다. 남편은 내 얼굴을 멍하게 바라본다. 당신, 봉제 기술 배워볼래? 난, 요리 배우고. 지루한 노랫말을 읊조리듯, 억양 없는 목소리다. 뜨악한 얼굴로 그를 본다. 그의 눈빛이 무심하다. 우리 떠나자. 아무런 표정이 없이 다만 그는 그렇게 중얼거린다. 떠나다니. 어딜? 도대체 무슨 말인지 싶어 한참 동안 그가 한 말을 헤아려본다. 거무튀튀한 그의 눈 밑을 보면서 문득 십여 년 전의 신혼여행을 떠올린다. 배낭을 메고 등산화를 신고 땀을 닦아내며 둘이서 올랐던 무등산과 금남로. 플래카드가 붙어 있던 학생회관과 인문대학 뒤쪽 후미진 계단과 동아리방……. 그가 신혼여행지로 원했던 곳은 제주도도 아니고 동해바다도 아니었다. 한 학기를 남겨두고 제적당한 대학과 그 근교였다. 우리는 아무 말 없이 서로를 본다. 빨리 씻고 자, 내일도 새벽부터 나가야하잖아. 나는 퉁명스럽게 대꾸하며 고개를 돌린다. 깍두기와 콩나물국이 맛없어서 못 먹겠다는 아이와 실랑이를 벌인다. 남편은 그런 나와 아이를 한동안 바라보더니 담뱃갑을 집어들고 벌떡 일어난다. 그의 발길에 아이의 플라스틱 블록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쏟아진다. 남편이 나가버리자 아이도 나도 입을 다물고 서로를 물끄러미 바라만 본다. 문득 스산해진다.

아이는 이십 분 넘게 변기 위에 앉아 있다. 얼굴이 시뻘겋다. 심한 변비다. 먹을 때는 맛있다고 하더니 햄버거 미워, 피자 미워, 소리소리 지른다. 나는 아이의 통통한 엉덩이를 잡고 양 옆으로 힘껏 벌린다. 아이는 울부짖는다. 아프다고 난리다. 항문이 벌어진다. 굵은 대변이 툭 떨어진다. 딱딱하게 굳은 덩어리를 내려다보며 차라리 아이를 굶겨야겠다는 모진 마음을 먹는다. 도마 위에 팽개쳐 둔 아귀를 다듬기 시작한다. 처덕처덕 칼을 내리쳐 몸통을 자른다. 한바탕 회오리바람이 휩쓸고 지나간 정신은 이제 맑다. 고요하다. 시장 남자의 설명을 되새기지 않아도 손길이 거침없다. 양념장을 준비하고 아귀를 버무린다. 그릇에 담아 랩을 씌운다. 냉장고에 넣으며 중얼거린다. 아귀찜을 만들어야지. 입안이 얼얼하고 뭉쳐진 속이 다 풀어지도록 맵고 맛있는 아귀찜을 만드는 거야.

문가에서 큭큭, 웃음을 참는 소리가 들린다. 문을 열어보니 아이들이 두 번째 문에 매달려 있다. 딸아이와 첫 번째 집 두 아이들이다. 계집아이들을 헤집으며 열린 문틈을 본다. 시큼한 술 냄새가 훅 달려든다. 옆집 남자가 방바닥에 대자로 뻗어 있다. 아랫도리를 벌거벗은 채다. 늙은 총각의 거웃과 발딱 선 성기가 선명히 눈에 들어온다. 나는 딸아이의 등짝을 후려치며 문에서 떼어낸다. 아이 손목을 붙들고 무작정 쪽문을 나선다. 난, 안 보려고 했는데에에 언니들이……. 매섭게 쏘아보자 아이는 울 것 같은 표정이다. 비가 갠 동네는 한바탕 물청소를 끝낸 직후처럼 말짱하다. 날 선 바람 한 자락이 잽싸게 등허리를 파고들어 어루만진다. 아이는 손목이 붙잡힌 채 어정거리며 뒤따른다. 마을 입구에 큼직한 공터가 있다. 군데군데에 빗물이 고여 크고 작은 웅덩이를 이루고 있다. 공터 안쪽에는 비닐로 덮어씌운 건축물이 쌓여 있다. 그 옆으로 두 개의 포장마차가 있다. 붉은 포장에 옹기종기 앉은 이들의 그림자가 드리워 있다. 남편의 뒷모습으로 짐작되는 그림자는 없다. 잡힌 손목을 풀어주자 아이는 공터에 쌓아둔 모래더미로 달려간다. 나는 좌회전 깜빡이를 켜둔 차량을 살펴본다. 헤드라이트 불빛을 쏘아보며 낯익은 택시를 찾는다. 공중전화부스가 공터 입구에 있다. 다들 핸드폰이 있으니 공중전화 안 쓰는 것처럼 택시도 그래. 집집마다 자가용 있고 어떤 집은 두 대 세 대 굴리고 다니니 누가 영업용 택시 타냐고. 걸핏하면 남편은 그렇게 말했다. 전화부스 안으로 들어간다. 유리가 깨져 있고 전화기는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다. 수화기를 들고 주머니를 뒤져 백 원짜리 동전을 넣는다. 손가락이 향하는 대로 번호를 꾹꾹 힘주어 누른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낮에 손바닥에 적고 몇 번씩 걸었던 슈퍼마켓 전화번호다. 아무런 소리가 없다. 댕강 잘려 있는 수화기 선이 비로소 눈에 들어온다. 그래도 수화기를 꼭 쥔 채 귓가에 바싹 대고 있다. 절대로 연결될 리가 없는 상태라는 사실을 뒤늦게 실감한다.

아이는 모래더미 근처에 웅크리고 앉아 여전히 모래집을 짓고 있다. 작은 손등 위에 모래를 수북이 쌓고 한 손으로 토닥토닥 다진다.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 집 다오, 노래 부르며. 아이의 노랫소리가 낭창낭창하다. 모래집이 꽤 견고하다. 모래에 파묻힌 작고 통통한 손을 살그머니 뺀다. 구멍이 뻥 뚫린다. 아이는 빠꼼히 뚫린 공간에 풀잎도 뜯어 넣고 작은 돌 몇 개도 집어넣는다. 제 손으로 모래집을 파삭 무너뜨린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 두껍아, 두껍아. 노래 부르며. 나는 두꺼비집 속에 있던 작은 돌멩이를 만져본다. 축축하지만 따뜻하고 매끄럽다. 아이의 체온이 느껴진다. 두꺼비 알 같다. 헌 집 줄게 새집 달라며 일부러 뱀에게 잡아먹힌다는 옴두꺼비에 대하여 들은 적이 있다. 알을 낳기 직전의 두꺼비는 뱀에게 먹힘으로써 스스로도 죽고 독을 퍼뜨려 뱀도 죽인다고 한다. 죽어버린 두꺼비 뱃속에서 알은 어미와 뱀을 먹으며 무럭무럭 자란다. 완전한 소멸과 완벽한 존재가 한자리에서 이루어질 수 있다니. 신기했었다. 소멸과 존재를 하나로 묶어주는 것은 두꺼비의 모성이 아니라 어쩌면 ‘독’ 때문이라고 생각해본다. 허물어지고 다시 세워지는 모래집 위에 늦은 저녁의 달빛이 부서진다. 아이는 지치지 않고 두꺼비를 부른다. 모래집을 짓는다. 되풀이되는 단순한 노랫말을 나도 함께 중얼거린다. 다가오는 차량을 살핀다. 남편은 어쩌면 장거리를 뛰고 있는지도 모른다. 외투에서 쇳조각이 찰랑찰랑, 몸에 부딪힌다. 열쇠다. 주머니 속에 손을 넣고 작은 쇳조각을 움켜쥔다. 아이를 데리고 집에 가야겠다 싶으면서도 늙은 총각의 벌거벗은 아랫도리를 지나치기가 싫어 미적거린다. 아이는 싫증이 났는지 모래집을 발로 부순다. 광고판 앞으로 달려간다.

가로등 불빛을 받은 대형 광고판은 푸르게 빛난다. 짧은 스커트를 입은 모델의 다리가 낮보다 더 길어 보인다. 스타킹에 감싸인 다리 사이에, 그 세모꼴의 공간에 들어가 있는 몇몇의 풍경들이 선명하다. 대형 쇼핑몰의 반들거리는 실내, 높고 정교한 새 아파트, 바다와 닿는 쭉 뻗은 고속도로. 여자의 다리 사이에 있는 그것들이 아늑해 보인다. 아이는 고개를 광고판에 바짝 들이댄다. 모델의 다리 속에 아이의 머리가 쏙 들어간다. 아이는 소리내어 광고 문구를 읽는다. 가치의, 절정에서, 입주합니다. 오토바이 몇 대가 굉음을 내며 달린다. 온 거리에 울려 퍼지는 엔진소리가 아이의 목소리를 묻어버린다. 아이가 옷자락을 잡아당긴다. 모델의 다리 사이에 있는 새 아파트를 들여다보던 내게 쇼핑몰을 가리킨다. 쇼핑몰 안에 아이가 좋아하는 피자집과 햄버거집이 주욱 늘어서 있다. 즐비한 식당가를 보면서 나는 아귀를 떠올린다. 내일 저녁에는 아귀찜을 만들어야겠다. 매콤하고 쫄깃하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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