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엄마의 품’ 死神도 비켜갔다…이란 매몰현장 극적구조

  • 입력 2003년 12월 30일 18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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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시간. 흙더미에 매몰된 사람이 생존할 수 있는 한계로 여겨지는 시간이다. 이란 남동부 케르만주(州) 밤시(市)에 지진이 강타한 지 만 3일을 넘어서는 29일 동틀 무렵. 각국의 구조대원들은 추가 생존자가 발견되지 않자 철수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72시간의 한계’는 상식적 한계일 뿐이었다. 건물 잔해 속에서 생후 6개월 된 여자 아기가 건강한 상태로 발견됐다. 나심이라는 이름의 아기는 어머니 품에 꼭 안긴 채 가냘픈 목숨을 부지하고 있었다. 이란 국민들은 비탄 속에서도 기쁨에 들떴다.》

하지만 무너지는 건물 파편으로부터 아기를 온몸으로 막았던 어머니는 숨진 지 하루가 지난 뒤였다. 주변에서는 형제자매로 보이는 아이들의 시신도 여러 구 발견됐다. 구호단체 요원들은 “밤이면 급격하게 기온이 떨어지는 추운 날씨 속에서 아기가 음식과 물도 없이 건강한 상태로 살아남은 것은 기적에 가깝다”며 놀라워했다.

극적인 구조 소식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이번에는 12세 소녀. 의식이 없고 한쪽 다리가 부러진 상태였다. 소녀는 항공기에 실려 다른 도시의 병원으로 급히 이송됐다.

소녀를 끌어낸 구조대원은 “부엌에 있다가 무너져 내린 지붕에 깔린 것으로 보인다”며 “다행히 지붕이 완전히 내려앉지 않아 숨쉴 공간이 생겼고, 주위에 먹을 것도 있었다”고 말했다.

30일에는 매몰된 두 아이가 새장 속의 카나리아 덕분에 구조됐다. 이란 국영통신사는 “구조대원들이 카나리아의 지저귀는 소리를 듣고 작업을 벌인 끝에 심한 부상을 입고 무너진 집 속에 쓰러져 있던 이들을 찾아냈다”고 보도했다.

기적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27일 밤 구조대원들이 흙더미 속에서 숨이 붙어있는 7세가량의 소년을 발견하고 급하게 흙을 파헤쳐 끌어내려 했으나 아이는 질식해 숨졌다고 외신은 전했다.

이제 구조대원들 사이에서 추가 생존자 발견에 대한 기대감은 거의 사라지고 있다. 26개국에서 온 1400여명의 구조대원들이 장비를 총동원해 나흘간 약 2000명을 구조했지만 지진 발생 나흘째인 29일에는 생존자가 거의 나오지 않았다.

인구 10만명의 소도시는 거대한 무덤으로 변했다. 시신 썩는 냄새가 시 전체에 진동하고 있다. 이란 내무부의 발표에 따르면 발굴된 시신만 2만8000구에 이른다. 어린이만 8000명쯤 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공동묘지는 불도저로 나르는 시신으로 이미 포화상태를 넘어섰다.

운 좋게 살아남은 자들에겐 살아남은 몫만큼의 고통이 남아있다. 야외에서 담요 1장에 의존해 추운 밤을 견뎌야 한다. 구호기관들이 텐트를 지원하고 있지만 턱없이 부족하다. 식량과 식수도 절실하다. 의료 전문가들은 조만간 전염병이 돌 것을 우려하고 있다.

김성규기자 kim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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