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관위 盧에 협조공문]野 “대통령 눈치보나” 반발

  • 입력 2003년 12월 30일 18시 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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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30일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총선 양강구도 발언’ 등에 대해 ‘협조공문’ 발송이라는 어정쩡한 조치를 내놓은 것은 사안의 미묘한 성격에 대한 선관위의 고민을 반영하고 있다.

선관위 관계자는 “대통령의 발언이 동기나 정황 등을 고려할 때 명백히 선거법을 위배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향후 선거에 간여한다는 오해를 없애기 위한 예방조치가 필요했다”고 말했다.

이번 결정은 대통령의 ‘총선 행보’에 대한 정치권의 우려를 감안한 조치이기도 했다.

실제 선관위 내부에서는 ‘협조공문’ 발송이 묘책 중 하나로 거론돼 왔다. 현직 대통령의 사전선거운동 사실을 인정하는 부담은 피하면서도 나름대로 ‘액션’을 취함으로써 권력에 대한 ‘눈치 보기’를 하고 있다는 비판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특정 당을 반대하게 유도하는 듯한 대통령의 발언이 ‘오해의 소지’는 있다고 하면서도 위법은 아니라는 명확한 이유를 밝히지 않은 것은 문제로 지적된다.

이 때문에 야당은 즉각 선관위의 ‘눈치 보기’라고 반발하면서 관권선거를 우려하고 있다.

민주당 함승희(咸承熙) 의원은 “공정한 선거관리를 해야 할 대통령이 특정당과 후보를 편드는 발언을 노골적으로 하고 있는데도 선관위가 법적 판단을 제대로 내리지 못한 것은 문제가 심각하다”고 반발했다. 그는 “향후 대통령의 불법선거운동과 그로 인한 탄핵 논란이 가열돼 선거판이 더욱 혼탁해질 것이다”고 우려했다.

중앙선관위의 ‘협조요청’은 △법위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위반의 소지가 있는 경우 △법에 위반되지 않지만 선거의 자유와 공정을 해할 우려가 있는 경우에 취하는 조치로 위법성이 없다는 판단이 전제가 된다.

선관위는 위법성이 강한 정도에 따라 △검찰에 대한 고발 및 수사 의뢰 △경고 △주의 △협조요청 순으로 조치를 취한다. 가장 가벼운 조치인 협조요청은 선관위원장의 의견 피력 차원이기 때문에 법적 구속력도 없다.

1989년 당시 이회창(李會昌) 선관위원장은 동해시 재선거와 관련해 노태우(盧泰愚) 당시 대통령과 각 당 대표에게 ‘협조공문’을 보낸 적이 있다. 당시 재선거를 앞두고 혼탁 과열 선거조짐이 보임에 따라 선거법의 철저한 준수를 촉구하는 내용의 공한을 보낸 것이다. 선관위가 현직 대통령에게까지 ‘사실상의 경고 메시지’를 보낸 것은 헌정 사상 처음 있는 일이어서 당시 언론은 이를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박성원기자 swpark@donga.com

박민혁기자 mh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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