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진 문화계 큰 별들, 어록과 삶의 향기

  • 입력 2003년 12월 30일 18시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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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내가, 내일은 네가,' 천주교 대구 주교좌성당 소속의 묘지 입구에는 이같은 말이 라틴어로 새겨져 있다. 미래의 죽음을 생각하며 오늘의 삶을 허송하지 말라는 의미를 담은 그 말은 죽은 자가 산 자에게 마지막으로 전해주는 깨우침이기도 하다. 올해 국내 문화계에서 유난히 많은 큰 별들이 떨어졌다. 한 해를 마감하면서 그들이 남긴 삶의 향기를 되새겨본다.》

▼"내 그림을 누가 평가해?"…평생 개미만 그린 화가 ▼

▽원석연(타계일 11월 5일·81세)=“내 그림을 다른 사람이 평가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그는 한평생 4B연필 하나만으로 승부를 걸었던 미술계의 기인이다. ‘개미화가’라는 별칭에서도 알 수 있듯이 50여년간 수많은 개미떼를 극사실적으로 묘사했다. 그의 그림은 매우 사실적이면서도 선(禪)적이고 철학적인 느낌을 준다. 평생 국전이나 공모전에 출품하지 않았다.

▼"내 이름을 내건 어떤 문학상도 만들지 말라" ▼

▽이문구(타계일 2월 25일·향년 62세)=“내 이름을 내건 어떤 문학상도 만들지 말라.” ‘관촌수필’의 작가로 한국의 토속적 정서를 소설로 되살려낸 그의 유언이다. 그는 1999년 민족문학작가회의 이사장으로 취임했을 때 문단의 진보와 보수 진영의 갈등을 풀기 위해 많은 애를 썼다. 고인의 뜻을 기려 작가회의, 한국문인협회, 펜클럽 한국본부가 공동으로 주관해 영결식을 치르는 등 그의 죽음은 문단이 하나로 모이는 계기를 만들었다. 5월 그의 유고 산문집 ‘까치둥지가 보이는 동네’가, 10월 동시집 ‘산에는 산새 물에는 물새’가 출간됐다.


▼"오도송인지 육도송인지 그런거 없어" ▼

▽서암 스님(3월 29일·86세)=“그 노장, 그렇게 살다 그렇게 갔다 해라.” “오도송인지 육도송인지 그런 거 없어.” 8대 종정(1993년 취임)을 지낸 스님은 임종게와 오도송(悟道頌·깨달은 뒤 읊는 게송)을 남기지 않았다. 그는 “좋은 말이 모자라서 세상이 이 모양인가. 부처님과 다른 옛 성현들이 넘칠 만큼 좋은 말씀들을 해 놓았지 않은가. 하나라도 실천해야지”라고 후학들을 가르쳤다.


▼"시라는 등대 때문에 내 인생은 흔들림 없었다" ▼

▽조병화(3월 8일·82세)=“시라는 고독한 등대 때문에 나는 흔들리지 않는 내 인생을 내 철학대로 후회 없이 살아온 것이다.”

‘한국 시단의 마지막 로맨티스트’라는 편운(片雲) 조병화 시인은 늘 이렇게 말했다. 시인의 49재를 맞아 ‘편운문학상운영위원회’는 4월 그의 고향인 경기 안성시에 시비(詩碑) 제막식을 가졌다.


▼"만장도 쓰지 않고 연화대도 꾸미지 말라" ▼

▽청화 스님(10월 21일·81세)=“이 세상 저 세상 오고 감을 상관하지 않으나, 입은 은혜 무량하니 보은 다하지 못함이 한스럽구나.” 40여년간 장좌불와(長坐不臥·잠잘 때도 눕지 않는 것)와 일종식(一終食·하루 한 끼만 먹는 것)을 지켜온 전남 곡성 성륜사 조실. 만장도 쓰지 말고 다비장 연화대도 꾸미지 말라는 유언에 따라 영결식은 검소하게 치러졌다.


▼"일의 참뜻을 깨달아야 사람다운 삶을 찾는다" ▼

▽이오덕(8월 25일·78세)=“일을 하면서 일의 참맛을 알고 일의 참뜻을 깨달아 사람다운 삶을 찾는 것, 이것이 우리 사람이 살아갈 오직 하나의 길이다.” 아동문학가이자 교육자인 이오덕씨는 평생 우리말 바로쓰기 운동에 헌신했다. 1983년 ‘한국 글쓰기교육연구회’를 만들었고 ‘우리글 바로쓰기’ 등 50여권의 책을 펴냈다.


▼조계종 분규 안정시켜 종단발전 기틀 다져 ▼

▽정대 스님(11월 18일·67세)=30대 총무원장(1999년 취임)과 동국학원 이사장을 지내는 등 종단 행정 쪽에 몸담으면서도 수행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1994년과 1998년 분규로 얼룩졌던 불교 조계종단을 안정시켜 발전의 기틀을 다졌다.


▼샘물같은 동시를 숱하게 남긴 아동문학 아버지 ▼

▽윤석중(12월 9일·92세)=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의 폐허 속에서 어린이들을 위해 샘물같이 맑고 고운 동시를 지은 한국 아동문학의 아버지. 그는 3·4조, 7·5조 등의 고전 율격을 살려 ‘퐁당퐁당’ ‘낮에 나온 반달’ 등 숱한 동요들을 지었다. 1956년 고인이 창립했던 새싹회는 요즘 사단법인으로 새롭게 출발할 것을 논의 중이다.


▼따뜻한 '下心'을 실천한 통도사 큰 어른 ▼

▽월하 스님(12월 4일·89세)=9대 종정(1994년) 역임. 영축총림 통도사의 방장으로 40여년간 통도사를 지켜온 큰 어른. 항상 사람을 따뜻하게 대하고 문밖까지 나와 배웅하는 등 ‘하심(下心)’을 실천했다. 또 몸져눕기 전까지 손수 빨래와 청소를 하고 울력(스님들의 공동작업)에도 참여했다.


▼한국 현대연극사에 이 사람이 없었다면…▼

▽이근삼(11월 28일·74세)=한국 현대연극의 개척자로 평가받는 극작가. 1959년 발표한 ‘원고지’는 사실주의 연극이 주류를 이루던 시대에 풍자가 가미된 희극 형식을 처음 도입한 작품으로 꼽힌다. ‘국물 있사옵니다’ ‘막차 탄 동기 동창’ ‘어느 노배우의 마지막 연기’ 등을 남겼다.


▼"참된 나 안에서 이웃과 인류는 나와 같은 몸 ▼

▽서옹 스님(12월 13일·91세)=“부처님이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고 말한 것은 ‘참된 나’의 인간선언입니다. ‘참된 나’의 자리에서 생각하는 이웃과 인류는 나와 같은 몸입니다.” 5대 종정(1974년 취임)을 지낸 고불총림 백양사 방장. 그는 ‘어디에도 걸림이 없고 머무는 곳이 없는’ 무상무주(無常無住)의 ‘참사람’이 내안에 있다는 것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의 것은 소중한 것이여' CF대사가 화두로 ▼

▽박동진(7월 8일·87세)=중요무형문화재 5호 판소리 적벽가 예능보유자. 1968년 판소리 ‘흥부가’를 6시간 동안 완창, 오랫동안 ‘토막소리’로 공연돼 오던 판소리의 완창 붐을 일으켰다. 한 CF에 출연해 ‘우리의 것은 소중한 것이여’라는 화두를 던지면서 ‘우리 문화 되찾기’ 바람에도 일조했다. 최근 유족이 국립국악원에 1억원의 장학기금을 내놓았다.


▼"세상속으로 들어간 것은 주님의 뜻 따른것" ▼

▽김승훈 신부(9월 2일·64세)=“내가 스스로 원해서 나선 것이 아니다. 예수님이 오신 이 세상은 그분을 주님으로 믿고 따르고자 하는 우리가 그 속 깊숙이 들어가 변화시켜 나가야 할 현장이기 때문이다.” 그는 한평생 인권과 민주화 운동에 몸 바쳤다. 1974년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을 창립했고 1987년 5월 서울대생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을 진범이 따로 있다고 폭로해 6·10항쟁의 도화선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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