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의 인물들]대검중수부장 안대희 外

  • 입력 2003년 12월 30일 18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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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동하는 2003년이었다. 노무현(盧武鉉) 정부가 들어선 뒤 정쟁(政爭)과 ‘코드’ 논쟁이 끊이지 않았다. ‘차떼기’로 현금을 날랐다는 대선자금 비리가 밝혀지면서 사회 전반엔 허탈감마저 감돌았다. 방사성폐기물처리장 설치를 둘러싼 전북 부안군민들의 저항에서 정부의 통치력 부재가 드러나기도 했다. 경제는 외환위기 때보다 더 어렵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활력을 잃었다. 취업난 때문에 젊은이들은 학교 문을 나서기가 두려웠다.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도 각 분야에서는 ‘꿈’의 단초를 제공하는 인물들의 활약상이 돋보였다. 본보가 선정한 분야별 ‘올해의 인물’ 6명을 통해 희망의 메시지를 찾아본다. 》

▼대검중수부장 안대희…살아있는 권력에 ‘성역없는 칼’▼

대선자금이라는 판도라의 상자를 연 안대희(安大熙·48)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

그는 검찰 역사상 단일 사건으로는 최대인 180여명으로 구성된 수사팀을 지휘하며 헌정 사상 처음으로 현직 대통령과 거대 야당의 대선자금을 수사하고 있다.

‘강직한 원칙주의자’라는 명성답게 살아 있는 권력도 그에게는 예외가 아니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동지’라며 애정을 나타냈던 안희정(安熙正)씨를 포함해 강금원(姜錦遠) 창신섬유 회장, 최도술(崔導術) 전 대통령총무비서관 등 측근들을 차례로 구속했다.

측근비리에 대한 성역 없는 수사가 이어지자 한나라당 최병렬(崔秉烈) 대표는 한때 그를 “대한민국 최고의 실세”라 불렀고 노 대통령은 “안 중수부장 때문에 죽을 맛이다”라고 말했다. 야당 대표의 칭찬은 불법 대선자금 수사의 칼날이 야당을 겨냥해 들어오자 ‘편파 수사’라는 비난으로 바뀌기도 했다. 재계 또한 “검찰 수사가 투자를 위축시키고 대외 신인도를 추락시키고 있다”며 불만을 터뜨렸다.

그러나 이에 대한 그의 뜻은 단호하다. 그는 “대통령 측근비리를 포함해 모든 것을 철저히 수사해 반드시 진상을 규명하겠다”며 원칙과 정도 수사를 강조하고 있다. 그는 대선자금 수사를 시작하면서 여러 차례 “자리에 연연하지 않겠다”며 스스로 의지를 다지기도 했다. 그는 30일 “내년 설날 전에 수사가 마무리되기는 힘들 것 같다”며 철저한 수사 방침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이현두기자 ruchi@donga.com

▼민주당대표 조순형…원칙의 힘 일깨운 ‘Mr. 쓴소리’▼

조순형(趙舜衡·68) 민주당 대표는 언제나 ‘자기 자리’를 지켜온 정치인으로 꼽힌다. 계보도, 조직도, 돈도 없는 그는 정치판의 모순과 타성을 향해 끊임없이 쏟아낸 ‘쓴소리’만이 유일한 자산이었다. 그래서 물도 많이 먹었다. 95년 국민회의 원내총무 경선, 2000년 민주당 8·30전당대회, 2002년 국회의장 선출 과정에서 그는 항상 꼴찌 언저리를 맴돌며 수모를 당했다. ‘항상 들러리’라는 비웃음도 따라다녔다. 81년 정치입문 후 23년간 거의 한 번도 중심에 선 적이 없다. 힘과 돈으로 움직여온 정치판에서 그는 당연히 외톨이였다.

그런 그가 올 11월 28일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압도적인 표차로 당 대표에 선출됐다.

있어야 할 자리를 그냥 묵묵히 지켰을 뿐인데, 대표직이 그에게로 왔다. 물론 동원할 계보도, 돈도 없었다. “지구당 방문은 괜찮다”는 당 선관위의 유권해석에도 불구하고 그는 지구당 순례조차 하지 않았다.

혹자들은 조 대표의 당선을 두고 당내 실세인 호남 중진들이 경선에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이는 틀린 말이다. 2004년 총선 승리를 위해 민주당은 ‘미스터 쓴소리’가 필요했을 뿐이다. 조 대표의 당선은 그래서 정치권의 비주류가 주류로 올라선 또 한번의 ‘반란’이었다.

미당 서정주 시인은 자신의 시(詩)에서 “스물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8할이 바람이었다”고 읊었지만 정치인 조순형을 키운 것은 8할이 민심(民心)이었다.

윤영찬기자 yyc11@donga.com

▼KAIST 위성센터 소장 임종태…토종기술로 科技위성 꿈 쏘다▼

10전11기. 끝내 우주 미아가 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잠재우며 11번 시도 끝에 9월 29일 마침내 교신에 성공한 ‘과학기술위성 1호’. 위성 개발 막바지에 제작과 발사를 진두지휘한 주인공이 바로 한국과학기술원(KAIST) 인공위성연구센터의 임종태(林鐘泰·53) 소장이다.

임 소장은 30여명의 연구원과 함께 ‘토종기술’로 위성을 만들었다. 이 센터가 위성 개발에 매달린 지난 5년간 숱한 어려움이 있었다. 계약직이라는 신분의 불안 때문에 연구원의 절반 이상이 센터를 떠난 것이 가장 대표적인 고충이었다.

2002년 1월에 부임한 임 소장은 사기가 떨어져 있는 연구원들에게 “힘든 만큼 성공의 열매는 훨씬 달 것”이라고 격려했다.

임 소장은 “위성의 성공은 과거 우리별 1, 2, 3호를 개발했던 센터의 잠재력을 보여준 것”이라며 우주개발의 꿈을 잃지 않고 끝까지 함께 한 연구원들에게 공적을 돌렸다.

과학기술위성 1호는 한국 주도의 첫 우주관측용 위성이다. 우주의 신비를 파헤칠 ‘우리 눈’을 갖게 된 것. 위성에 탑재된 원자외선 우주망원경 개발에는 미국 항공우주국(NASA)으로부터 자금지원도 받았다. NASA로부터 초정밀 제어를 해야 하는 위성 본체의 개발 기술을 인정받은 셈이다. 위성의 성공으로 이후 계획에 청신호가 켜졌다. 2016년까지 총 6기의 우주관측용 위성이 발사될 예정이기 때문. 또 한국이 소형위성 시장에 뛰어들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됐다.

이충환 동아사이언스기자 cosmos@donga.com

▼전경련회장 강신호…흔들리는 재계 궂은일 도맡아 ▼

강신호(姜信浩·76) 동아제약 회장이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 대행에 취임한 것은 11월.

손길승(孫吉丞) SK 회장이 SK비자금 수사 여파로 전경련 회장직을 사퇴한 뒤 ‘회장단 중 최고령자가 회장 대행을 맡는다’는 전경련 정관에 따라 후임을 맡았다.

당시 전경련을 포함해 재계 전체가 대선자금 수사로 위축돼 있었다. 수사가 본격화되면서 메가톤급 사실들이 잇따라 터져 나오자 재계는 구심점을 잃고 흔들렸다.

이 상황에서 ‘재계의 구원투수’로 등장한 것이 바로 강 회장이었다. 그는 취임하자마자 대검찰청을 방문해 수사 장기화에 대한 재계의 걱정을 알렸다. 수사 대상 기업들에 대해서는 검찰 수사에 협조하라고 촉구하는 등 활발한 행보를 보였다.

이와 함께 정치자금 제도 개선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정치자금 기부자 명단 공개, 정치자금에 대한 회계감사 의무화, 기업의 정치자금 직접 제공 금지 등이 뼈대.

“식사 전에 이를 닦는 사람에게 ‘식사 후에 닦아야 한다’고 아무리 설명해도 잘 고쳐지지 않습니다. 그만큼 습관은 고치기가 어렵다는 이야기이지요. 정치자금 제공 관행도 마찬가지입니다. 제도를 개혁해야 합니다.”

평소 약속시간을 지키기 위해 교통이 막히면 승용차 대신 지하철을 자주 이용한다는 강 회장. ‘이번 사태를 계기로 정치자금 제도를 개혁해 재계가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도록 하겠다’는 약속도 지킬 수 있을지 주목된다.

공종식기자 kong@donga.com

▼'살인의 추억'감독 봉준호…관객 510만…‘대박의 추억’▼

2003년은 봉준호(奉俊昊·34) 감독의 해였다.

그가 연출한 ‘살인의 추억’은 미제 사건으로 남은 화성연쇄살인사건에 1980년대의 부조리한 정치 사회적 상황을 투영시킨 작품. 4월 개봉된 이 작품은 전국 관객 510만명으로 올해 한국영화 중 최다 관객을 기록했다. 한국영화가 올해 시장점유율 50%에 접근하며 전성기를 맞은 데에도 견인차 역할을 해냈다.

덕분에 봉 감독은 섹시함과 친근함이 공존하는 이미지로 신드롬을 일으킨 가수 이효리, 한국과 일본에서 음판판매량 250여만장을 기록한 보아를 물리치고 문화계를 대표하는 올해의 인물로 선정됐다.

‘살인의 추억’은 흥행뿐 아니라 국내외 영화상도 휩쓸었다. 대종상, 대한민국영화대상, 춘사영화제, 영평상 등에서 주요 부문을 수상했다. 일본 도쿄영화제, 이탈리아 토리노영화제, 스페인 산세바스티안 영화제 등 국제무대에서도 호평을 받았다.

“상도 좋지만 영화 밖의 일이 너무 많아 힘들고 괴로웠다. ‘살인의 추억’을 빨리 잊고 싶다. 다른 일이 아닌, 영화 만들기에만 몰두하고 싶다.”

‘살인의 추억’을 만들면서 제작비만 건져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는 봉 감독. 그는 데뷔작 ‘플란더스의 개’(2000년)에 이어 두 번째 작품으로 일약 스타 감독이 됐다는 점이 크게 부담스러운 눈치다.

그는 내년 4월 전주국제영화제 ‘디지털 3인3색’에서 선보일 ‘인간 조혁래’와 재난을 소재로 한 신작 영화를 통해 관객들에게 선사할 또 다른 ‘영화의 추억’을 준비하고 있다.

김갑식기자 dunanworld@donga.com

▼아시아 최다 홈런 이승엽…“딱” 한방에 시름 훌훌▼

온통 야구장을 수놓은 잠자리채의 물결. 그곳엔 최소 2억원을 호가할 것이라는 ‘황금 잠자리’가 화려한 비상을 준비하고 있었다.

시즌 마지막 경기인 삼성-롯데전이 열린 10월 2일 오후 7시 대구야구장. 2회말 ‘국민타자’ 이승엽(李承燁·27)의 방망이 끝에서 태어난 황금 잠자리는 힘차게 날갯짓을 하며 외야를 향해 포물선을 그렸다.

시즌 56호. 이승엽은 한 번 펄쩍 뛰어오른 뒤 관중의 기립박수를 받으며 천천히 다이아몬드를 돌았다. 39년 동안 깨지지 않았던 오 사다하루(王貞治·일본 다이에 호크스 감독)의 아시아 홈런 신기록이 바뀌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황금 잠자리는 관중석이 아닌 외야 펜스 바로 뒤로 떨어졌고 마침 이곳에서 홈런 행사를 준비 중이던 이벤트 업체 직원이 주워 곧바로 삼성 구단에 기증했다.

올해 이승엽의 홈런 신기록처럼 온 국민이 애타게 기다리고 기뻐했던 ‘사건’도 드물었을 것이다. 삼성 경기가 열릴 때마다 홈런 볼을 잡으려는 관중의 잠자리채가 물결쳐 진풍경을 이루었다.

이승엽은 이에 앞서 6월 22일 SK와의 대구경기에선 세계 최연소 300호 홈런(26세10개월4일)을 쏘아 올렸고 사상 첫 7년 연속 30홈런, 최소경기 50홈런 등으로 올 한 해 한국 야구사를 바꾸어 놓았다.

새해엔 일본 지바 롯데 마린스에서 활약할 이승엽. 56호 홈런은 그가 경제난에 찌든 국민들에게 준 청량제이자 ‘희망’이었다.

정재윤기자 jaeyu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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