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지명훈/'오페라 이순신' 살려야 한다

  • 입력 2003년 12월 28일 18시 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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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최초의 오페라단인 충남 공주의 성곡오페라단 백기현(白琦鉉·51·공주대 음악과 교수) 단장은 요즘 ‘호소문’을 들고 각계를 찾아다니고 있다.

“지방에서 오페라단을 운영하는 것이 이토록 어려운 일인 줄은 몰랐습니다”로 시작되는 그의 호소문은 지방에서 문화의 꽃봉오리를 키워나가려는 한 문화인의 의지와 현실과의 괴리에서 오는 고충을 잘 드러내고 있다.

그가 만든 ‘오페라 이순신’은 이달 초 러시아 공연에서 현지 언론의 큰 찬사를 받았다. 그러나 러시아 공연 등을 위해 쓴 12억원 가운데 국비와 지방비 지원으로 6억원은 확보했으나 기업 협찬으로 충당하려던 나머지 절반을 구하지 못해 파탄 위기에 처해 있다는 것.

충남도를 통해 행정자치부에 특별교부금 6억원을 요청했지만 담당자로부터 ‘해외공연을 왜 추진했느냐’는 질책만 받았다.

백 단장이 공주에 오페라단을 세운 것은 1990년. 지금도 사정이 별반 다르지 않지만 당시 지방은 오페라 불모지였다. 그는 이런 상황에서 ‘이순신’을 만들어 한국 오페라의 세계화를 추진해왔다. 물론 “무모하다”는 얘기도 들었지만 그는 일종의 ‘문화운동’이라고 생각하며 꿈을 이루기 위해 매진해왔다. 그러나 늘 작품에 전념하기보다는 예산을 ‘구걸하러’ 다니는 데 더 많은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1998년 충무공 순국 400주년에 맞춰 현충사(충남 아산)에서 정부 지원으로 ‘이순신’을 초연할 때를 제외하고는 늘 운영비에 쫓기는 신세를 면하지 못했다.

이번 러시아 공연 때도 당초 예산지원을 약속했던 문화관광부는 공연을 1주일 앞두고 현지로 출발하기 하루 전인 지난달 6일에야 예산을 지급했다. 이 때문에 공연장 예약을 위해 사채를 끌어 써야 했다.

그는 개인적으로는 이미 파산 상태. ‘이순신’을 만들어 2차례 해외 공연과 33차례 국내 공연을 하는 사이 자신의 아파트를 처분해야 했고 현재 얹혀살고 있는 아버지 집마저 저당을 잡힌 상태다. 그와 부인 최경숙(崔慶淑·49·공주대·유아교육과 교수)씨의 월급이 상당부분 차압당한 지도 오래다.

백 단장은 호소문을 전달한 뒤 “기필코 ‘이순신’을 회생시켜 세계무대로 나아가도록 하겠다”며 수첩을 꺼내 자신이 찾아다녀야 할 ‘SOS 대상자 명단’을 보여줬다. 하나같이 정치인들이었다. 국산 오페라의 세계화를 위해 헌신하는 오페라 단장이 공연장 아닌 은행을 들락거리고 정치인을 찾아다녀야 하는 현실이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

지명훈 사회1부 기자 mhj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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