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가랑비 속의 외침'…中 민초들의 욕망 우정 사랑

  • 입력 2003년 12월 26일 17시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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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제3세대 문학의 대표작가로 불리는 위화는 지금까지 국내에 소개된 그의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이 소설에서도 문화대혁명으로 일그러진 중국 민중의 소소한 삶을 그려냈다.사진제공 푸른숲
중국 제3세대 문학의 대표작가로 불리는 위화는 지금까지 국내에 소개된 그의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이 소설에서도 문화대혁명으로 일그러진 중국 민중의 소소한 삶을 그려냈다.사진제공 푸른숲
◇가랑비 속의 외침/위화 지음 최용만 옮김/366쪽 1만원 푸른숲

위화의 소설을 읽노라면 떠오르는 그림이 있다. 언젠가 ‘월드 뉴스’에서 소개한, 중국에 큰물이 났을 때의 장면이다. 물의 압력을 견디지 못해 둑이 터지기 일보 직전, 그 둑이 터진다면 물길을 따라 형성된 마을과 경작지들은 모두 물에 잠겨버릴 태세였다. 그때 중국인들의 대처법이 기가 막혔다. 진흙탕 물처럼 누런 인민복을 입은 군인들과 농부들이 얽혀 서로 어깨를 끼고 사슬을 얽어 소위 ‘인간 제방’을 만든 것이다.

등을 미는 무서운 물의 기세에 몇은 견디지 못하고 고꾸라져 떠내려가기도 했다. 그러면 또다시 몇이 기묘한 동양식 요들송 같은 중국말을 요란스럽게 지껄이면서 몰려들어 끊어진 사슬을 잇고 또 잇고 하는 것이었다. 그 미욱스럽고도 끈덕진 모습이 하도 어이없어, 내 머릿속에 그 장면은 ‘중국’을 표상하는 또 다른 이미지로 자리 잡고 말았다.

‘살아간다는 것’ ‘허삼관 매혈기’에 이어 한국에 소개되는 위화의 장편소설 ‘가랑비 속의 외침’은 이처럼 거대한 땅 위에 잡풀처럼 돋아났다 스러지는 수많은 인민들의 날것 그대로의 모습이 생생히 전달된다. 탐욕과 우둔과 비겁과 분노가 젊은 작가 위화의 달빛을 타고 흐르는 듯한 서정적인 문장에 실려 표현되는 것이다.

그의 작품 중 한국 독자들에게 가장 늦게 소개되는 이 작품은 기실 출세작 ‘살아간다는 것’에 앞서 발표된 위화의 첫 장편소설이다. 그의 재능이 아직 거친 돌 속에 갇힌 보석 같았던 때에 쓰인 처녀작인지라 그만큼의 장점과 단점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형식에서 일면 거칠지만 그 내용의 보배로움은 숨길 수 없이 빛난다.

‘가랑비 속의 외침’은 주인공 손광림을 중심으로 한 그의 가족사를 그리고 있다. 내용에서는 ‘살아간다는 것’의 주인공 복귀나 ‘허삼관 매혈기’의 허삼관이 살아간 신산한 궤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다소 자폐적이고 섬세한 주인공 손광림의 눈에 비친 세상은 가혹하다. 끔찍하게 저질스럽고 비열한 아버지 손광재와 난폭한 형 손광평, 구차하고 비굴한 구시대의 상징과도 같은 할아버지 손유원이 마치 자신의 꼬리를 물고 있는, 끝도 시작도 없는 상상 속의 뱀 우로보로스처럼 엉켜 있다. 그러나 이처럼 개성적인 욕망의 인물들 이면에 고통과 굴욕을 삶의 아름다운 징표로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

섬약한 소년 소우와의 우정과 매혹적인 여성 풍옥청, 죽음에 맞선 할아버지 손유원의 모습은 어리석고 흉포한 악인들까지도 두루두루 감싸 에두르는 대륙풍의 중국식 서정을 일깨운다. 어쨌든 이 이야기는 재미있다. 그리고 위화의 최대 장점, 기가 막힌 상황에서 난데없이 터져 나오는 웃음이 이 짧지 않은 책을 넘겨가는 일을 아쉽고 즐겁게 한다.

2000년 늦봄에서 초여름쯤, 한국을 방문한 위화를 만난 적이 있다. 시인 김정환 선생과 소설가 최인석 선생이 바람을 잡아 새벽의 미사리까지 택시를 달렸다.

위화는 가수 전인권의 음악에 완전히 매혹되었노라고 했다. 그는 통역이 따로 필요 없을 만큼 영리하고 눈치가 빠른 사람이었다. 그의 눈빛은 끝없이 자기 바깥의 것을 향해 반짝이고 있었지만, 그는 역시 자기를 알고 자기 안의 것을 끄집어내는 데 천부적인 사람이었다. 가장 민족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사실도. 중국을, 그리고 인생을 알기를 원하는 이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김별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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