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학]'배고픈 유전자'…물만 먹어도 살찌는 유전자?

  • 입력 2003년 12월 26일 17시 1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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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 연구가 급속히 발전하면서 상당수의 비만이 의학적 치료가 필요한 ‘질병’으로 여겨지게 됐다. 서울 시내의 건강클리닉에서 한 여성고객이 배, 허리 및 어깨의 살을 빼기 위해 기계장치를 이용해 운동하고 있다.동아일보 자료사진
유전 연구가 급속히 발전하면서 상당수의 비만이 의학적 치료가 필요한 ‘질병’으로 여겨지게 됐다. 서울 시내의 건강클리닉에서 한 여성고객이 배, 허리 및 어깨의 살을 빼기 위해 기계장치를 이용해 운동하고 있다.동아일보 자료사진
◇배고픈 유전자/엘런 러펠 쉘 지음 이원봉 옮김/279쪽 1만원 바다출판사

자전거 페달을 계속 밟아야만 작동하는 TV가 발명됐다고 해서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그 발명가는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확실한 비만치료기를 발명했다고 자랑이 대단했다. 좀 더 날씬한 몸매를 위해서든, 정상 체중에 도달하기 위해서든 살을 빼기 위한 노력과 투자는 현대인의 보편적 문화로 자리 잡았다. 살 빼기 열풍은 현대인의 집단적 강박 현상이다.

운동과 식이요법 정도는 양반이다. 심각한 부작용과 후유증이 생길지 모른다는 사실도 살을 뺄 수 있다는 희망을 꺾지는 못한다. ‘죽어도 좋다! 살만 뺄 수 있다면….’ 그럼에도 매일매일 우리의 신경을 정말로 곤두세우는 것은 우리를 살찌게 만드는 것들이 곳곳에 늘어서 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살과의 전쟁에 뛰어들어 보면 금세 억울하다는 생각이 든다. 왜 누구는 많이 먹어도 날씬하기만 한데 왜 나는 물만 먹고 자도 뚱뚱한가 말이다.

비만은 단지 의지박약의 문제이므로 습관만 고치면 얼마든지 해결될 수 있다는 통념은, 누구보다 투철한 정신력으로 다이어트를 수없이 반복해 왔던 우리의 수많은 뚱보들에겐 아무런 위안도 주지 못한다. 도대체 비만은 왜 오는 것일까.

전 세계 성인의 30% 정도가 비만에 시달리고 있으며 비만 관련 제약시장 규모가 1조달러에 이르는 지금, 비만의 정체를 밝히는 일만큼 화급한 일도 드물 것이다. 미국 보스턴대 교수이자 과학저널리즘 학자인 저자는 이 책에서 비만에 관한 진실을 찾아 여행을 떠난다. 물론 유전자가 문자 그대로 배고플 리는 없다. 식욕을 조절하는 생화학 메커니즘에 관여하는 유전자를 부르는 애칭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

지난 10여년 동안 전 세계의 과학자들은 이 비만 유전자를 찾기 위해 끈질긴 노력을 해왔다. 그렇게 해서 찾아낸 것이 이른바 ‘렙틴’ 유전자다.

이 유전자는 쓰레기통을 뒤지고 언 물고기를 갉아먹는 등 대식(大食) 행동을 보이던 어떤 남매를 유전학적으로 연구하는 과정에서 발견됐다. 흥분한 과학자들은 체내의 렙틴 농도가 비만을 결정한다는 가설을 세우고 연구를 거듭했으나, 불행히도 비만의 유전적 메커니즘은 훨씬 더 복잡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런 결과에 가장 크게 실망한 이는 과학자도, 엄청난 돈을 투자한 제약회사도 아닐 것이다. 죽음보다도 더 싫은 비만의 고통에서 해방되고 싶은 수억명의 현대인일 것이다.

저자는 유전학 연구가 급속히 발전하면서 비만을 보는 시각이 달라지고 있다고 말한다. 게으름과 탐욕의 상징이었던 비만이 의학적 치료가 필요한 ‘질병’으로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유전적 요소가 있다고 해서 인간을 살찌우는 온갖 환경들이 비만과 상관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저자도 자본주의 상품의 유입으로 섬 전체의 사람들이 몇 년 사이에 급속히 뚱뚱해진 태평양 중서부의 열대섬 코스라에의 예를 들면서 환경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새해에 다시 한번 살과의 전쟁을 치르고자 의지를 불태우고 있는 사람이라면 지피지기(知彼知己)를 위해서라도 연말에 꼭 한번 읽어볼 만한 책이다.

장대익 서울대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 박사과정

daeik@chollia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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