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향기][파리에서]파리 북서쪽의 소도시 왜 그곳에 가고 싶을까

  • 입력 2003년 12월 26일 17시 16분


코멘트
루앙, 화가들의 천국(Rouen, Paradis des peintres) /프랑수아 레피나스 지음 르페레트르

한 해가 저물고 있다. 지난주 필자는 마지막 수업을 마치고 한국학 수업을 듣는 루앙대 학생들과 함께 조촐한 프랑스식 다과 파티인 ‘포(pot)’를 갖는 것으로 올 한 해를 마감했다. 이제 2주간의 ‘노엘(크리스마스)’ 방학이다. 짧지만 달콤한 휴식을 취하며 새해를 설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파리에 사는 필자가 루앙에 가려면, 고흐의 말처럼 모네의 그림에 나오는 ‘생라자르역’에서 기차를 타야 한다. 자동차로 갈 경우에는 파리 서쪽의 A13 고속도로에서 출발, 도중에 ‘모네의 집’이 있는 지베르니를 거치게 된다. 굽이치는 센강을 따라 서북쪽으로 126km 떨어진 곳에 있는 노르망디의 고도(古都) 루앙. 파리에서 그리 멀지 않고 영국으로 가는 길목이라 일찍부터 산업이 발달한 곳이기도 하지만, 자연 풍광이 무척 아름다워 많은 예술가들을 배출하고 끌어 모았던 ‘예술의 도시’이기도 하다.

루앙 출신 문인들로는 프랑스 문학을 대표하는 피에르 코르네유, 귀스타브 플로베르, 기 드 모파상 외에도 대중 추리작가로 명성을 떨친 ‘괴도 뤼팽’의 모리스 르블랑(그의 박물관은 ‘코끼리 절벽’으로 잘 알려진 알바트르 해안의 ‘에트르타’에 있다)이 우리에게 친숙하다. 이 지역 출신 화가들로는 낭만주의 회화의 창시자인 테오도르 제리코를 비롯해 에밀 니콜, 샤를 앙그랑, 레옹 쉬잔 등 19, 20세기에 활동한 화가들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루앙, 화가들의 천국’은 지난 수세기 동안 루앙을 찾은 화가들의 그림을 모아 놓은 책이다. 저자는 루앙에서 화랑을 운영하며 법원 감정사로 활동하는 프랑수아 레피나스. 그는 ‘루앙학파(Ecole de Rouen)’ 등 앞선 몇 권의 책에서 이미 이 책의 주제와 유사한 관심을 드러낸 바 있다.

이 책에는 영국 에든버러대 조형예술학과 교수인 리처드 톰슨이 영어와 프랑스어로 쓴 서문에 이어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88명의 화가와 그들의 작품에 대한 짧은 해설이 덧붙여져 있다. 모네, 피사로, 부댕, 터너, 고갱…. 이들은 언덕에서 내려다본 루앙의 전경, 루앙 성당들, 루앙의 상징인 ‘벽시계(gros horloge)’와 그 주변 거리들, 루앙의 센강과 그곳에 닻을 내린 배 등 루앙의 안팎을 정감 있게 그려내고 있다.

이 책은 정신없이 파리와 루앙을 오고간 필자에겐 이 도시의 숨은 매력을 새삼 깨닫게 해주는 ‘산소같이 맑은 책’이었다. 일반 독자들에겐 파리에서 멀지 않은 노르망디 지방으로 발걸음을 재촉케 하는 ‘고급 여행안내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임준서 프랑스 루앙대 객원교수 joonseo@worldonline.fr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