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리즘/특별기고]남시욱/KBS 사실 확인도 않고 보도

  • 입력 2003년 12월 25일 18시 4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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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의 특정신문 때리기가 도를 넘어섰다. 노무현 정부 출범 이후 정권에 비판적인 동아 조선 중앙 등 주류신문들을 집중적으로 공격해 온 KBS는 최근 들어 이들 대신문을 ‘친미사대주의 언론’이라고 매도하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동아 조선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줄기차게 붙여 온 ‘친일’ 꼬리표에다가 새로 ‘친미’ 딱지까지 붙여 이들 신문의 정통성과 신뢰성에 먹칠을 하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KBS가 매주 방영하는 ‘미디어포커스’는 12월 13일 ‘한국 언론의 빅 브러더 미국-미국보다 더 미국적인 한국 언론’편을 내보냈다. 한국의 대신문들은 미국의 ‘조종’을 받아 우리 자신의 국가이익이 아닌 미국의 입장만을 ‘대변’한다는 터무니없는 내용이었다. 이 같은 주장은 국민의 부담으로 운영되는 공영방송으로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사실 왜곡이다. 또한 나름대로 한국의 장래를 고민하는 우리 언론인들의 민족적 직업적 자존심을 짓밟는 엄청난 모독행위가 아닐 수 없다.

세계의 모든 국가는 나름대로 외국과의 인적 교류계획을 마련하고 상대국의 각계 인사들을 자국에 초청한다. 초청 인사 가운데는 여론 조성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언론계 인사가 포함되게 마련이다. 각국 정부는 외국 인사들의 초청사업뿐 아니라 외교공관으로 하여금 현지에서 그 나라의 각 분야 사람들과 공식 비공식 교류를 통해 친선과 홍보활동을 포함한 외교를 펴고 있다. 이런 외교활동 방식은 미국뿐 아니라 현재 우리 한국도 행하고 있다. 이런 상호접촉은 외교하는 측에서는 외교활동이 되지만 언론측에서는 취재활동의 일환이다. KBS는 동아 조선의 흠을 부각하기 위해 이런 활동들을 ‘공작’ 차원으로 몰아붙이고 관련자들을 비도덕적인 행동이나 한 것처럼 묘사했다.

KBS는 이라크 파병문제를 한미동맹관계와 국가 이익의 차원에서 다룬 주류 언론의 태도를 ‘미국 이익 대변지’로 폄하했을 뿐 아니라 북핵문제에서까지 사실을 왜곡했다. 이날 프로에서 내레이터는 이렇게 말했다. “(한국 언론의) 미국 입장 일변도의 이런 보도 행태는 대북 관련 보도에서 더욱 여실히 드러났다.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대북강경책을 보수언론들은 받아 적기에만 바빴다. 한반도의 미래가 걸린 북핵문제에 있어서도 미국의 입장만을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이라크 파병문제에 관련된 미디어포커스의 주류언론 공격은 이날이 처음이 아니다. 이미 6일의 미디어포커스에서도 한 미디어비평가가 “(한국이) 미국 속국도 아닌데 언론의 자기 비하적인 태도는 문제”라고 말하면서 “언론의 몫은 전쟁이 아니지요. 언론이 앞장서서 이라크 파병을 주장해서는 안 됩니다. 언론은 전쟁을 부추겨서는 안 됩니다. 언론은 대안을 모색해야지요. 언론은 이라크의 현황과 미래 같은 것을 분석해야 합니다”라고 주장했다.

이런 주장은 완전한 전투병 파병반대 주장인 동시에 보수 언론들의 논조를 공격하는 것이었다. 미국을 ‘한국 언론의 빅 브러더’로 몰다 보니 결과적으로 미국은 민주주의 수호를 내세우면서 독재정권을 비호하는 ‘이중적인 태도’를 지닌 부도덕한 국가로 묘사되게 마련이다. KBS는 지금 반(反) 언론캠페인, 반(反) 보수캠페인뿐 아니라 반(反) 부시 대통령 캠페인까지 벌이려는지 의문이 생긴다.

KBS는 모든 취재 보도에 있어서 다른 사람의 말을 인용 보도할 때는 그 말의 사실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는 자사의 방송강령을 지키지 않았다. 미국의 외교문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그들의 입장에서 작성된 것이므로 여러 사정에 기인한 오류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그런데도 KBS는 왜 이 같은 취재의 기본상식을 짓밟았을까. 그것은 진실 규명보다는 특정언론 공격이라는 목적 때문일 것이다. 뉴욕 타임스의 윤리강령은 비판을 받는 어떤 대상자라도 신문이 나왔을 때 놀라거나 자신이 응답할 기회가 없었다고 느끼게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KBS는 지금 무엇을 위해,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가.

남시욱 언론인·세종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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