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순덕/햄버거 패러독스

  • 입력 2003년 12월 25일 18시 3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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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도널드 있는 곳에 공산주의 없다’는 말이 있다. 거대기업 맥도널드 패스트푸드 얘기다. 1982년 유고슬라비아 개점으로 공산국가에 진출한 최초의 햄버거 레스토랑이라는 영예를 거머쥔 이래 90년 모스크바, 92년 베이징에 맥도널드의 대형 아치가 자리 잡았다. 조만간 북한에도 맥도널드가 들어설지 모른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특이한 명령’에 따라 북한 각지의 대학에 ‘고기겹빵’이라는 이름의 햄버거가 급식되고 있으니까. 김 위원장은 “나라 살림이 어려워도 새로운 세대는 튼튼하게 키우고 싶다”며 ‘세계적으로 유명한 고급 식빵’을 공급하게 했다고 북한 노동신문이 전했다.

▷평양시내에도 햄버거를 파는 가게가 등장했다. ‘미 제국주의의 상징’ 맥도널드가 아니라 자체 생산한 것이라지만 차츰 맛을 들이다 보면 본토 햄버거가 궁금해지는 것도 시간문제일 터. 하필 광우병 쇼크가 세계를 강타한 지금 북한에서 ‘햄버거 찬가’가 울려 퍼지다니 얄궂기도 하다. 한국에서 팔리는 맥도널드 햄버거에 들어간 쇠고기는 100% 호주산이어서 광우병과 상관없다지만, 미국에서는 맥도널드 주가가 급락하고 햄버거 판매도 줄었다. 미국에서 쇠고기를 가장 많이 사들이는 곳이 바로 맥도널드이기 때문이다. 96년 인간 광우병의 첫 희생자인 당시 20세의 영국인 남성도 어릴 때 즐겨 먹었던 쇠고기 햄버거 때문에 감염된 것으로 판정됐었다.

▷햄버거와 광우병은 인간과 자연, 그리고 문명의 모진 인연을 드러낸다. 패스트푸드의 대명사 햄버거는 기계화 획일화 현대화의 상징이다. 이 같은 ‘맥월드’의 세상에선 풀 뜯어 먹고 살던 동물이라고 홀로 평화로울 수 없다. 곡물사료 값이 비싸지자 소 사육업자들은 값싼 동물성 사료에 눈을 돌렸고 도축업자들도 쇠고기 찌꺼기를 활용할 곳이 필요했다. 1997년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광우병을 막기 위해 동물성 사료를 금지하기까지 미국 소의 75%는 소가 소를 먹는 ‘동족상잔의 비극’을 감수해야 했다. 이윤 극대화를 향한 인간의 오만, 자연의 섭리 외면과 테크놀로지에 대한 맹신이 광우병을 불러온 셈이다.

▷광우병이 더 무서운 것은 치료법이 없을 뿐 아니라 발병까지 오랜 시간을 무지 속에 보내야 한다는 데 있다. 광우병 소가 발견되더라도 송아지 시절 먹었던 사료를 추적해야 하고 인간 광우병 감염자 역시 10∼40년 전에 먹은 것까지 파헤치지 않는 한 감염원인을 알 도리가 없다. 빠른 음식을 추구하다 느려 터진 질병에 인류가 전전긍긍하게 됐으니, 선한 눈의 소가 자연계를 대표해서 인간과 문명에 대한 복수에 나선 건 아닐까.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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