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점 탐험]12월20일 21일째 네번째 블리자드!!!

  • 입력 2003년 12월 23일 14시 2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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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리자드가 부는 새벽 운행을 준비하는 박영석 탐험대장. 벨트를 매려 하지만 바람에 날려 매기가 쉽지 않다.
블리자드가 부는 새벽 운행을 준비하는 박영석 탐험대장. 벨트를 매려 하지만 바람에 날려 매기가 쉽지 않다.
날씨 : 맑음

기온 : 영하 15도

풍속 : 초속14.4m 새벽부터 블리자드

운행시간 : 07:00-09:00 (2시간)

운행거리 : 4.9km (누계 :388.6km) /남극까지 남은 거리: 746km

야영위치 : 남위 83도 19분 223초/서경 80도 00분 743초

고도 : 1,160m / 84도까지 남은 거리: 75.7km

네 번째 블리자드!!!

밤사이 바람이 점점 세지더니 새벽부터 블리자드로 바뀌었다. 박대장은 애써 태연하게 바람소리를 외면한다. 아침식사 준비를 하기 위해 밖에 나갔다 온 오희준 대원은 고개를 가로 젓는다. 블리자드는 오늘로 4번째. 겪을 만큼 겪었기에 예정대로 아침 7시 출발을 강행한다. 바람의 세기는 지난번과 다름없다. 하지만 어제까지 내린 눈이 바람과 함께 몰아치며 '광란의 칼춤'을 춘다. 그래도 일단은 전진이다. 바람을 정면으로 받으니 앞으로 나아가는 속도는 더디기만 하다. 한발 한발 내딛는 발걸음이 마치 슬로우 비디오를 보는 듯 하다. 대원들은 일단 고개를 숙여 얼굴로 불어오는 바람을 피한다. 대신 몸을 앞으로 둥글게 말아 바람과 맞선다. 환한 낮인데도 눈보라는 시야를 침침하게 만든다. 나침반을 자주 들여다보는 박대장의 표정이 밝지 않다. 두 시간 운행 후, 박대장이 운행을 멈추고 텐트를 치라는 지시를 내린다. 어려울수록 더욱 신속해지는 대원들의 행동은 남극탐험대의 좋은 팀워크(team work)를 말해준다. 텐트 치는 속도가 번개 같다. 좋은 날씨 속에서 느긋하게 텐트를 치던 때와는 비교가 안 된다. 텐트는 휴식시간 동안만이라도 바람을 피하기 위한 박대장의 결단이다. 텐트 안에서 뜨거운 음료와 간식을 먹으며 박대장은 대원들에게 말한다.

"쉴 때는 확실히 쉬어라"

바람은 세력을 더 키워만 간다. 박대장이 풍속계를 들고 밖으로 직접 나서본다. 풍속 14.4m에 순간 풍속은 16m를 넘는다. 바람의 세기만 놓고 보면 그다지 염려스런 상황은 아니지만 바람이 동반하고 온 눈보라가 문제였다. 밖에서 들어 온 박대장, 다시 대원들에게 지시한다.

"이런 상황이면 운행해서 득 될 것이 없다. 오늘은 푹 쉬기로 하고 앞으로는 날이 좋을 때 12시간이고 13시간이고 걷자"

대원들은 이에 동의한다. '날이 나쁘더라도 운행을 하는 것이 어떠냐'고 해왔던 이현조 대원도 밖의 상황에 두 손을 들었는지 박대장의 판단에 고개를 끄덕인다. 대원들이 바람 속으로 나선다. 매트리스를 썰매에서 꺼내와 바닥에 깔고 침낭을 들여오고 야영에 필요한 준비를 한다. 텐트 안이 정리되자 어느 정도 온화한 분위기가 된다. 밖의 상황은 광란(狂亂) 그 자체. 박대장과 대원들은 이 바람 속에서 다른 나라 탐험대들이 무사할지를 걱정한다. "그들도 우리 팀을 걱정하겠지." 동병상련(同病相憐)이라 하지 않던가.

저녁메뉴는 특별식으로 라면이 준비된다. 박대장이 버너를 꿰차고 앉아 직접 끓인다. 바람이야 어떻든 일찍 먹고 일찍 잠을 자둬야 내일의 운행에 도움이 된다. 이치상 대원은 얼굴 표정이 그리 밝지 않다. 고향에 두고 온 둘째 우영이의 돌날 생각에 입술 쓰라린 것도 잊은 듯하다. 그런 이대원에게 박대장은 넌지시 "집에 전화라도 한번 걸라"고 배려를 한다. 탐험대가 한국을 떠난 이후 개인적인 일로 전화를 걸었던 대원은 없다. 박대장만이 탐험과 관련된 일로, 강철원 대원이 대행사와의 협조 등으로 전화를 할 뿐이다. 대원 중 유일하게 결혼한 이대원에게는 일주일에 한번씩 전화를 걸 수 있는 특혜를 주고 있다.

특별 라면식으로 저녁식사를 마친 대원들은 적당히 누운 자세로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눈다. 이현조 대원의 백령도 군대얘기, 이치상 대원의 시골동네 사람들 얘기 등등. 유독 오희준 대원만이 탐험기간 내내 별다른 얘기가 없다. 이곳이 토요일이니 한국은 일요일 새벽이다. 휴일이라서 그런지 게시판의 글도 올라오지 않아 심심하기 그지없다. 바람소리 자장가 삼아 잠을 청하는 수밖에….

남극탐험대 이치상 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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