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교 토지보상 집단거부 움직임

  • 입력 2003년 12월 22일 18시 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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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행자 사주 받은 감정평가 무효다’ ‘보상기준일을 사업승인일로 하라’ ‘생계 및 이주대책 확약하라’ ‘공장 이주단지 조성하라’….

22일 오전 경기 성남시 판교동 판교신도시 예정지구.

길목 곳곳에 주민 요구를 담은 현수막이 어지러이 나부끼고 있었다.

성남시와 대한주택공사는 22일 토지보상명세 통보에 착수했다. 한국토지공사는 23일경 통보를 시작한다. 토지보상가격은 주민들의 가장 중요한 관심사. 보상가는 대체로 2003년 1월 기준 공시지가의 200∼300% 수준에서 결정됐다.

이에 대해 주민들은 ‘어림없다’는 분위기다.

주민 대표들은 이날 보상명세통지서를 반송하기로 의견을 모으고 토공 및 주공 사무소를 방문해 발송작업 중단을 요구했다. 23일엔 성남시청 앞 광장에 모여 감정평가 무효화를 요구하는 집회를 열고 토공 본사를 항의방문할 예정이다.

판교지구토지공사지역보상협의대책위원회 나철재 위원장(63)은 “이 일대가 1970년대 이후 자연녹지와 보전녹지로 지정돼 땅값이 묶인 동안 인근지역 땅값은 4∼5배 올랐다”면서 감정가격의 500% 이상을 보상해줄 것을 요구했다. 주민 이기환씨(50)는 “30여년 동안 주택 신축 및 증축은 물론 화장실도 못 고쳤다”고 목청을 높였다.

부동산업계는 보상금으로 지급되는 5조∼6조원의 현금이 어디로 움직일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아직은 본격화하지 않았지만 돈이 풀리면 ‘판교특수’가 불붙을 조짐이다.

성남시 운중동, 백현동과 경기 용인시 대장동, 고기동 등 토지수용지역 바깥쪽은 이미 올여름부터 가을까지 매기가 한바퀴 돌면서 땅값이 30∼50% 오른 상황. 판교 건너편의 분당신도시 이매동, 야탑동 등지의 전세금이 최근 강세를 보이는 것도 판교 보상이 임박한 것과 관련이 있다는 진단이다.

멀리는 경기 광주시 이천시 등도 영향권에 편입돼 가고 있다. 이매동 현대공인 김경옥 실장은 “11월 초 광주시 오포읍에 있는 나대지 300평을 평당 150만원에 사줬는데 한 달도 안돼 250만원으로 올랐다”고 귀띔했다.

은행들도 현금 낚기에 부산하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최근 지점장 전결금리 한도를 0.2%포인트 올린 데는 판교 인근의 성남지점 및 용인지점의 건의가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아직은 기대감 수준이다. 분당 오렌지부동산 이춘모 대표는 “주민들이 현금을 쥐는 내년 초는 돼야 본격적인 흐름이 형성될 것 같다”면서 “보상수준과 주민성향으로 볼 때 경기 광주 이천 안성시 여주군 등 외곽 지역으로 움직일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지구 내 가장 넓은 도로인 57번 지방도로.

인적은 드물고 오가는 차량도 별로 없었다. 그러나 길 양쪽에는 한 집 건너 1개꼴로 부동산중개업소가 들어서 있었다.

신한부동산 곽창주 대표는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인 2001년 11월 말 이후 1건도 중개를 하지 못했다”고 푸념이다. 그런데도 이 일대 37개 중개업소는 문을 열고 있다.

“신도시 안에 8평짜리 상가점포를 우선 분양받을 수 있는 권리를 확보하기 위해서죠.”

음성적인 ‘딱지 거래’도 간간이 이뤄지고 있다고 한다.

원주민이 택지지구 안에서 60∼70평짜리 택지를 조성원가보다 싸게 분양받을 수 있는 대토권에는 현재 3억5000만∼4억원의 프리미엄이 붙어 있다. 상가 점포도 8평 기준으로 4000만∼5000만원의 웃돈은 얹어줘야 살 수 있다.

아직은 권리가 확정되지 않은 ‘물딱지’다. 더욱이 앞으로 2년여 동안 명의변경을 할 수 없다.

“위험이 많이 따르는 데다 주민들이 물건을 내놓지 않아 거래가 활발하지는 않다”는 게 중개업자들 얘기다.

판교=이철용기자 lc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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