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서재진/북한과 리비아는 다르다

  • 입력 2003년 12월 22일 18시 3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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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이란 시리아 북한 등과 함께 테러 지원국으로 지목되던 리비아가 대량살상무기(WMD) 포기를 선언했다.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이 체포된 직후에 나온 반응이긴 하지만 1996년 이후 미국의 경제봉쇄로 인한 고통이 계속되고 있는 데다 9·11테러 이후 가중되고 있는 미국의 ‘힘의 외교’가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지도자를 압박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美 ‘MD계획’ 추진 명분 필요 ▼

특히 카다피는 후세인이 체포되자 다음 타깃은 리비아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해 미리 항복함으로써 경제도 살리고 정권의 생존도 도모하기 위한 선택을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미국의 힘의 외교가 승리한 것은 리비아에서만이 아니다. 이라크전쟁이 끝난 직후 미국이 이란의 핵무기 개발 의혹을 제기하자 이란은 10월 21일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핵사찰 수용을 선언했다. 시리아도 알 카에다의 자금으로 추정되는 2350만달러를 압류하는 조치를 취함으로써 미국의 대테러 전쟁에 호응했다.

이라크전쟁에서 미국이 3주 만에 승리하기 전까지는 미국을 견제하고자 했던 강대국들이 많았으나 모두 현실을 인정하고 미국의 질서에 순응하는 방향으로 태도를 바꾸었다. 가장 강력하게 이라크전쟁을 반대했던 프랑스와 독일이 전쟁이 끝나자마자 미국의 비위를 맞추기에 이르렀다. 반전국 프랑스와 독일이 이라크 채무를 탕감하기로 합의했다는 사실은 중요한 대목이다.

이라크전쟁 이후 가장 적극적으로 친미국가로 돌변한 나라가 중국이다. 근래 들어 원유수입국이 된 중국은 미국이 장악하게 된 중동의 석유를 안정적으로 공급받아야 하는 데다 세계 유일 초강대국으로 부상한 미국의 협력을 앞으로 상당기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북한의 핵무기 문제 해결에 협력하라는 미국의 요청에 대해 중국이 예전과는 다른 태도로 적극 호응하고 있는 점이 그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일본은 12월 19일 미국이 개발해 실전 배치하고 있는 미사일방어(MD)체제를 내년부터 도입하기로 공식 결정했다. 내년 예산에 1000억엔을 반영할 계획이라고 한다. 일본이 미국으로부터 MD체제 참여를 요청 받은 것이 1993년 9월 27일 열린 실무회담에서의 일이니 10년 만의 결정이다.

이처럼 미국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미국을 거스를 수 있는 나라는 이제 지구상에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제 북한은 어떻게 할 것인지가 우리의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북한도 WMD 포기 선언이 불가피하다. 북한은 미국이 요구하는 핵문제와 미사일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경제봉쇄가 지속돼 경제를 회생시킬 수 없으며 김정일 정권의 장래도 불확실해진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미국의 한반도에서의 이해관계가 단순하지 않으며, 따라서 북한 문제의 해법도 단순하지 않다는 점이다. 북한이 WMD 포기를 선언하더라도 실질적인 포기가 확인되기까지는 미국이 까다로운 조건과 절차를 내세워 시간을 끌려고 할지 모른다. 미국의 입장에서 볼 때, 북핵 문제는 당장 해결해야 할 과제이지만 미사일 문제는 현재 추진 중인 MD체제 계획의 타깃으로 남겨둬서 MD체제 추진의 명분을 살리는 매개로 삼으려 할 가능성이 있다. 일본이 이제 MD체제에 참여한다고 공식 결정은 했지만 MD체제가 실제 집행되기 위해선 그에 합당한 명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북한과 리비아가 처한 환경의 차이다.

▼核-미사일 ‘일괄타결’ 갈등 예상 ▼

이런 이유 때문에 북한은 6자회담에서 핵문제와 미사일 문제를 포함한 모든 안보관련 사항을 미국과의 관계개선 문제와 일괄 타결하자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은 다자틀 내에서 핵문제만 우선적으로 해결하고 미사일과 재래식 무기, 그리고 인권문제 등은 추후 협상하겠다는 것이다.

이 점에서 북한은 오히려 협상 카드를 키우면서 벼랑 끝 전술을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 핵 카드를 포기할 경우 미국의 관심조차 끌 수 없다는 점에서, 핵문제를 현안으로 남겨둔 채 일괄 타결을 줄기차게 요구할 것이다. 결국 북핵 문제는 리비아의 WMD 포기 선언과 관계없이 당분간 접점을 찾기 어려울 전망이다.

서재진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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