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에세이]한광협/肝보호 비법은 없다

  • 입력 2003년 12월 22일 18시 2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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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이면 각종 송년회로 사흘이 멀다 하고 술자리가 이어진다. 세계 2위를 자랑하는 우리나라 술 소비량 중 30%가 연말연시에 집중돼 있다. 피할 수 없는 자리라면 건강을 위해 요령 있게 마시는 법이라도 익혀두자.”

이 글은 ‘망년회와 술’이라는 검색어로 확인한, 한 인터넷 사이트에 게재된 글이다. 이처럼 연말이면 ‘건강음주법’ 기사들이 언론에 자주 회자된다. 많은 사람들이 연말이면 반드시 송년회를 하고 그러면 당연히 술을 마셔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간이 나빠지지 않을까 동시에 걱정하는 것이다.

필자도 간을 전공한 ‘죄’로 연말이 다가오면 술을 마시면서도 간을 보호하는 ‘비법’을 알려달라는 요청을 받곤 한다. 정답은 안 마시거나 덜 마시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의 주문은 술을 자주 마시면서도 덜 고생하고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달라는 것이다.

적당한 술은 약, 과음은 독이 된다는 것을 누구나 안다. 간에서 알코올의 평균 해독 능력은 시간에 비례해 일정하다. 다만 사람에 따라 차이가 있어 술 몇 잔이나 몇 병이 적당하다고 정하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각자 적당한 양의 술을 마시면 된다. 평소의 주량 이하로 마시고, 기분이 도도해지는 정도 이상을 급하게 마시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 정도에서 끝나면 즐거운 담소와 아쉬운 헤어짐 속에 귀가할 수 있고 다음날 정상근무가 가능하다. 그러나 술은 중추신경계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마시다보면 제어력이 약해져 평소의 주량을 넘기는 것이 다반사다. 더욱이 잔을 돌리며 술을 권하고, 나아가 주량과 관계없이 누구나 마셔야 하는 폭탄주가 돌아가는 한국적 음주문화는 본인의 통제가 불가능하다.

과음한 술을 간이 해독하지 못하면 이 술은 간뿐 아니라 신체 여러 부위에 손상을 줘 노화를 촉진한다. 간에 반복적으로 부담을 줄 경우 지방간이 될 수 있으며 평소 간질환을 갖고 있던 사람에게는 연말의 과음과 폭음이 건강에 치명타가 될 수도 있다.

가능하면 술을 천천히, 섞어 마시지 않는 것이 좋으며 위에서의 빠른 흡수를 줄이기 위해 공복시 음주를 피하고 단백질이 풍부하고 신선한 안주를 함께 섭취하는 것이 좋다. 지나치게 기름지거나 자극적인 안주는 혈액내 중성지방 수치를 높이거나 위에 자극을 줄 수 있다. 술과 함께 물을 자주 마시면 술을 희석시키고 음주량도 줄일 수 있으며 체내 수분부족을 막아 다음날 탈수와 갈증을 막아준다. 과음 후 꿀물처럼 당분이 많고 흡수가 빠른 음료를 마시면 갈증과 숙취해소에 다소 효과가 있을 수 있다. 음주로 인한 숙취를 막아주고 피로회복에도 도움이 된다는 건강식품도 다소 도움이 될지 모르나 효과를 과신하면 득보다 해가 클 수 있다.

하여간 숙취해소를 위해 이처럼 많은 비법과 처방이 개발되고 연말마다 건강음주법이 필요한 나라가 또 있을지 궁금하다. 솔직히 필자는 과음 후에는 숙취로 고생하는 쪽이 건강에 좋을 것 같다. 그래야 며칠은 술을 멀리하고 모임에도 가지 않을 테니 말이다.

직장에서 열심히 일한 것도 부족해 일과 후에까지 연일 모임에 참석해야 하는 우리 직장인들에게는 그 모임들이 평소 부족했던 대화를 취하지 않고도 흉금없이 나눌 수 있는 자리가 되기 바란다. 즐거워서 마시는 적당량의 술은 건강에 해가 적으나 속상해서 마시는 술은 정말 속을 상하게 할 위험이 있다.

한광협 연세대 의대 교수·내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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