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창혁/후세인과 김정일

  • 입력 2003년 12월 21일 18시 4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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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권력의 속성 탓일까. 독재자들은 중동이든 극동이든 희한하게도 닮은꼴이다.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과 북한의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도 그렇다.

우상화 같은 얘기는 차치하더라도 며칠 전 영국의 BBC방송이 보도한 후세인의 심리분석은 김 위원장에 대한 국내 전문가들의 정신분석과 놀랍도록 일치한다. BBC는 후세인이 순교 대신 생존을 선택한 것은 ‘누구보다 강한 생존 본능과 권력 의지, 그리고 강박증이 결합된 당연한 결과’라고 분석했다.

얼마 전 국내에서 출간된 ‘김정일 리포트’에서도 정신분석가들은 “김정일은 생존본능이 뛰어나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단언하고 있다.

남북정상회담까지 한 ‘같은 민족’을 후세인과 동일시하는 데 대해 거부감을 느낄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분명한 것은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눈에는 피부색이 다르고, 수염이 있고 없고의 차이는 있겠지만 두 사람이 한 치도 다름없는 독재자로 각인돼 있다는 사실이다.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와 이란, 북한을 싸잡아 ‘악의 축’이라고 단정했다고 해서 하는 말만은 아니다.

‘악의 축’ 중에서도 으뜸으로 꼽히던 후세인 정권은 제거됐다. 당연한 순서지만, 국제사회의 시선은 다시 평양의 선택에 쏠리고 있다.

사실 작년 10월 북한이 우라늄 농축 방식의 핵 개발을 시인한 이후 제2차 북핵 위기가 국제사회의 현안 중 하나로 급부상했지만 부시 행정부의 문제해결 우선순위는 이라크였다. 올 4월의 베이징(北京) 3자회담, 8월의 6자회담, 그리고 베이징 워싱턴 도쿄(東京) 서울 평양을 교차하는 이런저런 접촉과 협의가 이어졌지만 부시 행정부가 진정으로 북핵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뭔가 ‘질적 변화’를 추구한다는 느낌은 없었다.

민주당의 김경재(金景梓) 의원은 이라크 사태와 미국의 대선 일정(내년 11월)을 거론하며 “내년 11월까지는 아무 일도 없을 것”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에게 북한 문제는 그런 유의 분석이나 평론의 대상일 수 없다. 더구나 ‘악의 축’으로 지목돼온 이란은 후세인 생포 직후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을 받아들이겠다고 밝혔고 ‘불량국가’로 간주돼온 리비아도 19일 대량살상무기(WMD)의 자진해체를 선언했다.

이제 북한만 홀로 남은 형국이다. 6자회담이라는 대화의 틀이 유지되고 있지만 제임스 켈리 미 국무부 차관보조차 마치 ‘돼지몰이(herding cats)’ 같다며 고개를 흔들고 있다. 그 사이 갖가지 다자 협상의 논리와 퍼즐 맞추기가 횡행하면서 ‘뭔지 모르지만 어찌됐건 외교적 해결방안을 찾지 않겠느냐’는 모호하고, 안이하고, 무책임한 인식만 확산되고 있다. 그 뿌리에는 “지성과 분별력, 개혁마인드를 갖고 있으며 상식적으로 얘기할 수 있는 타입”(김대중·金大中 전 대통령)이라는 2000년 남북정상회담 때의 ‘김정일 인물론’도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

후세인은 이라크 국민을 지키기 위해 유엔의 사찰을 거부하고 미국과 대결한 게 아니었다. 그는 이라크를 사유화했고, 사적 독재 권력을 지키기 위해 변화를 거부했던 것이다. 그런 점에선 김 위원장이 후세인의 ‘할아버지뻘’이다. 독재자는 똑같다. 아니 독재 권력의 속성상 똑같을 수밖에 없다. 김 위원장에 대한 기본인식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김창혁 국제부 차장 c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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