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박성원/선관위 손발묶는 ‘이상한 개혁案’

  • 입력 2003년 12월 21일 18시 3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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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선거자금을 단속할 카메라 렌즈의 뚜껑을 닫으라는 식이다.”

중앙선관위의 한 고위관계자는 21일 국회 정치개혁특위가 최근 선관위에 부여된 불법 자금 감시 단속권의 ‘알맹이’를 빼버리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며 ‘개혁이 아닌 개악(改惡)’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특위는 19일 선거법 272조에 규정된 선관위의 선거범죄 관련 자료제출 요구권과 금품·향응 제공 관련 동행 및 출석 요구권, 증거물품 수거권을 삭제하는 것을 다수안으로 채택했다.

선거비용 관련 자료제출 요구를 거부할 경우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4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한 현 규정도 100만원 이하 과태료로 바꿨다. ‘감시망을 느슨하게’ 하고, 처벌은 ‘솜방망이’에 그치게 하겠다는 식의 개악 조치들이다. 이 가운데 압권은 선관위 직원의 선거범죄 조사와 관련해 ‘직권남용죄’를 신설한 대목이다.

선관위의 실무관계자는 “형법에 공무원 일반의 직권남용죄가 엄연히 있는데 선거법에 아예 ‘특별 직권남용죄’를 두겠다는 것은 자신들의 불법선거 단속시 이 조항을 들이대 방패막이로 삼겠다는 뜻”이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선관위의 단속권 제한을 주장한 일부 의원들은 최근 선거법 위반 혐의로 선관위 조사를 받아온 것으로 알려져 일각에선 ‘불순한 동기’를 의심하고 있다.

실제로 한 의원은 11월 후원회 행사를 하면서 지역구에 초청장을 1만1000장 이상 뿌리고 참석 주민에게 관광버스 6대와 점심 저녁 식사를 제공한 혐의로 선관위로부터 3차례나 자료제출을 요구받았고, 다른 의원은 불법인쇄물 제공 혐의 등으로 선관위로부터 5차례 경고 혹은 주의 조치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특위측은 “선관위의 과다한 권한과 위헌적 내용을 합리적으로 수정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선관위의 감시망 무력화’를 위해 담합을 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는 지적이다.

더욱이 특위는 자문기구인 범국민정치개혁협의회가 정당 집회 때 음식물 제공을 금지하도록 제시한 개혁안도 거부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내년 예산에 1400억원으로 반영된 17대 총선 관련 예산은 1300여억원이나 늘리자는 방안을 내놓는 등 후안무치(厚顔無恥)한 행태를 보이고 있다.

국회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 대선 직후부터 정치개혁을 다짐해놓고는 1년간을 선거구제 개편과 선거공영제확대 등 잿밥만 놓고 싸우다가 마감(올해 말)을 코앞에 두고 겨우 합의한 것이 ‘불법선거 감시망 초토화’냐”고 개탄했다.

박성원기자 sw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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