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분열의 대통령’으로 끝나려는가

  • 입력 2003년 12월 21일 18시 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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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은 끝내 ‘분열의 리더십’을 보이려는가. 친노(親盧) 단체들의 행사 ‘리멤버 1219’에서 한 대통령의 발언은 이런 의구심을 갖게 한다. 노 대통령은 “대선이 끝났는데도 그들은 아직도 승복하지 않고 있다”면서 “시민혁명은 끝나지 않았으며 계속될 것”이라고 했다. “이 혁명과 기적은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가 이룬 것이므로 여러분이 다시 한번 일어서 달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청와대는 ‘정치개혁을 위한 의식개혁 운동이 계속돼야 한다’는 뜻이라고 해명했지만 발언 곳곳에서 드러난 대통령의 현실 인식은 보다 심각한 우려를 갖게 한다. 야당은 사전 선거운동이라고 비난하고 나섰지만 단순히 그런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사회를 보는 노 대통령의 인식이 여전히 가치론적 이분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은 ‘그들’과 ‘우리’를 구분했다. ‘우리’가 노사모라면 ‘그들’은 누구인가. 지난 대선에서 자신을 지지하지 않았으며, 대통령의 표현을 빌리면 ‘특권과 기득권과 반칙으로 이 세상을 주무르던 사람들’이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 국민을 이런 식으로 반분(半分)하는 예는 찾아보기 힘들다. ‘시민혁명’이란 말도 이해하기 어렵다. 시민혁명이란 근대 자본주의사회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시민계급이 절대왕권에 맞서 인권과 정치적 자유를 쟁취해낸 혁명이다. 대통령과 노사모가 시민혁명의 주체라면 그 대상은 또 누구란 말인가.

노 대통령은 ‘그들’이라고 했으나 취임 초 80%대에 달했던 높은 지지율 속에는 ‘그들’의 지지도 들어있었다. 망국병이라는 지역할거주의만 하더라도 대통령이 영남 출신에 민주당 후보여서 크게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당선 1년이 지난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지지율이 급락하고 기대가 실망으로 바뀐 게 ‘그들’ 때문인가, 아니면 대통령과 그 주변 때문인가.

노 대통령의 이분법적 인식이 행여 우리 사회의 주류를 바꾸겠다는 생각에서 나왔다면 위험한 노릇이다. 주류와 비주류란 한 쪽이 다른 한 쪽을 대체하는 게 아니다. 양쪽을 통합해 국민적 에너지로 승화시키는 것이 국가지도자인 대통령이 할 일이다.

국민은 ‘모두의 대통령’을 요구한다. 특정집단이나 이념에 기울지 않고 국민통합을 먼저 생각하는 대통령을 원한다. 헌법이 대통령에게 국가의 독립과 영토 보전, 국가의 계속성과 헌법 수호의 의무를 부여하고 있는 이유를 노 대통령은 깊이 헤아리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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