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96년 천문학자 칼 세이건 사망

  • 입력 2003년 12월 19일 18시 3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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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건이 미국 교회협의회 사무총장인 캠벨 목사에게 물었다. “당신 같이 똑똑한 사람이 어떻게 하느님의 존재를 믿는가.”

그녀는 바로 반문했다. “당신같이 똑똑한 사람이 어떻게 하느님을 믿지 않는가.” 캠벨은 실제 두 눈으로 본 사람이 아무도 없는 블랙홀의 존재는 믿으면서 그런 질문을 하는데 깜짝 놀랐다.

그러나 ‘오직 증거가 있어야 믿는다’는 세이건의 고집은 확고했다. 캠벨은 답답했다.

“당신은 사랑을 믿는가?”(캠벨)

“그렇다.”(세이건)

“사랑의 존재를 입증할 수 있는가?”(캠벨)

사랑은 신앙과 마찬가지로 그 한가운데에 입증하지 못할 무엇이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라는 데 세이건은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는 임종 마지막 순간에도 귀의(歸依)하지 않았다. 죽음의 피난처를 구하지 않았다. 부인의 회고. “남편은 믿음을 갖고자 한 적이 없었다. 다만 알고자 했을 뿐이다.”

칼 세이건. 그는 죽음도 삶과 마찬가지로 오직 사실(事實)로 직시하고자 했던 과학자였다.

그만큼 과학의 경이와 신비를 일반 대중에게 널리 퍼뜨린 사람은 없었다. 그의 저작은 전문 지식을 바탕으로 했으나 대중들은 그의 시적 상상력과 철학적 사색에 매혹됐다. 그의 ‘코스모스’는 천문학의 문외한들을 지구 밖으로 초대했다.

‘태양계가 너무 비좁다’고 생각했던 세이건.

외계생명체에 대한 그의 집착은 대단했다. “만약 우주에 우리뿐이라면 공간의 엄청난 낭비일 것이다.” 그의 원작소설을 영화화한 ‘콘택트’에 나오는 말이다.

그는 우주에 티끌처럼 외롭게 떠있는 지구를 ‘창백한 푸른 점’이라고 명명했다. 맹목적이고 공허하며 침묵할 뿐인 우주.

세이건은 우주로 나아가자고 주장한다. “우주의 외딴 시골구석에서 원숭이의 사촌으로 태어난 인간에게 유일한 기회는 광활한 우주뿐이다.”

그는 ‘외계생명체 탐색(SETI)’ 계획을 적극 격려했다. 세이건은 “SETI는 우주의 바닷가에 처음 발을 담그는 위대한 시도”라고 말했다.

이기우기자 key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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