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장환수/KOC위원 명함값이 수억원?

  • 입력 2003년 12월 19일 18시 31분


코멘트
“이런 자리를 뭐 하러 돈까지 주고 하나요?”

대한올림픽위원회(KOC) 전 위원들이 KOC 위원장이었던 김운용 민주당 의원에게 수억원의 금품을 제공한 사실이 밝혀지자 전이경 KOC 위원은 머리를 갸웃거렸다. 도대체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이었다.

이윤재 대한체육회 사무총장도 “KOC 위원 자리는 심하게 말하면 명함용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만큼 별 볼일 없는 자리라는 얘기다.

그러나 한 사람은 1억3000만원을 건넨 혐의로 구속됐고 다른 한 사람은 4억여원을 준 사실이 들통 나 검찰의 조사를 받고 있다. 전 위원이나 이 총장의 말과는 딴판이다. 도대체 KOC 위원은 어떤 자리인가.

결론부터 말하면 전 위원과 이 총장의 말이 맞다. KOC 위원은 명예직에 가깝다. 4년 임기의 KOC 위원은 현재 75명이지만 위원장과 7명의 부위원장단, 명예총무 등 몇몇 자리를 빼면 거의 하는 일이 없다. 상임위원들의 추천을 받도록 돼 있는 선임 절차도 극히 형식적이다.

2년 전 강원 평창군과 전북 무주군이 2010년 동계올림픽 국내 유치 후보도시를 놓고 겨룰 때 모처럼 ‘할 일(의결권)’이 주어졌지만 그때도 당시 김운용 위원장의 독단에 가까운 결정에 따라 거수기 구실만 했을 뿐이었다.

KOC의 한 직원은 “국제대회를 유치할 때 홍보위원으로 활동하는 게 사실상 KOC 위원이 하는 대외활동의 전부”라며 “평상시엔 1년에 한두 번 회의에 참석하는 게 고작”이라고 털어놨다. 그런데도 거액이 오간 속사정은 무엇일까.

김 의원에게 돈을 건넨 두 사람은 모두 기업인이다. 앞으로 수사를 통해 밝혀지겠지만 체육계에선 이들이 그럴듯해 보이는 직함을 탐냈거나 막강한 영향력을 지닌 김 의원의 힘을 빌리기 위한 수단으로 KOC 위원 자리가 필요했다고 보고 있다.

구속된 이광태씨는 “KOC 위원이 된 뒤 김 의원측으로부터 접대비 찬조금 명목의 금품 제공을 요구받았다”고 털어놨다. 그러나 떳떳하게 KOC 위원이 됐더라면 돈을 건넬 이유가 없다. 검찰 조사를 받고 있는 아디다스코리아㈜ 회장 김현우씨는 국가대표 선수들이 아디다스 운동화를 공식용품으로 사용하게 해 달라는 청탁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스포츠의 기본은 페어플레이 정신이다. 그런데도 대한체육회와 함께 한국 아마추어 스포츠를 대표하는 KOC에서 이처럼 비리가 판치고 있었으니 부끄러운 일이다.

김 의원이 한국 체육을 이끌어 온 기간은 무려 30년.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라는 말은 체육계에서도 예외가 아닌 것 같다.

장환수 스포츠레저부 기자 zangpabo@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