還俗…낙오 아닌 또 다른 구도의 길

  • 입력 2003년 12월 18일 18시 4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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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이나 신부 수녀에게 어떻게 출가(出家)하게 됐느냐고 물어보는 것은 실례다. 하지만 더 큰 실례는 출가했다가 환속한 이들에게 왜 속세로 돌아왔느냐고 묻는 것이다.

환속한 이들은 자신이 과거 절과 수도회에 있었다는 사실을 드러내지 않는다. 낙오한 패배자처럼, 성직을 수행하기에 문제가 있는 파탄자로 보는 시선 때문일 것이다. 이들의 행방을 쫓는 것도 어렵고 행방을 알았다 해도 이야기를 듣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비구 수녀 비구니 신부 수사 등 5명의 환속과 그 이후의 삶을 담은 책 ‘환속’(1만원·마음산책)은 프리랜서 작가 김나미씨가 5년여간 이들을 인터뷰한 내용이다.

1980년 출가해 1996년 환속한 정연 스님(가명·40)은 이제 두 아이의 아버지이자 컴퓨터 수리업체 사장이다. 그는 한때 신도 1000명이 넘는 절의 주지, 불교학 석사, 참여불교연대 등 8개 불교단체의 직함을 갖고 있던 ‘종단의 떠오르는 샛별’이었다. 그러나 그는 종단 선거관련 분규와 말사(末寺) 문제에 대한 책임의 화살이 자신에게 집중되면서 견딜 수 없어 환속했다.

“환속한 뒤 16년의 승려생활을 되돌아보니 ‘언제 대종사가 돼 대접받나’하는 세속적 목표를 위해 살았던 것 같습니다. 출가의 본분을 잊고 부처님을 팔아먹었지요. 내 앞길을 방해하는 사람을 미워하고….”

환속 후 식품회사 영업직 등을 전전하던 그는 우연히 컴퓨터 수리사업의 길에 발을 들여놓아 정착했다.

카타리나 수녀(가명·49). 19세 때부터 22년간 대구 베네딕도 수녀원에서 살았다. 그는 어린 나이에 잘 모르고 간 곳이 자신과 맞지 않음을 알고 몸부림치다가 세상으로 다시 나왔다. 그는 현재 경북의 한 오지에서 홀로 농사를 지으며 산다.

“뒤뜰에서 가꾸는 채소에서, 아침에 지저귀는 새소리에서, 그리고 저녁노을에서 하느님이 함께하심을 느껴요. 수녀원을 나와 오히려 하느님과 가까워졌습니다.”

그는 수녀원 생활과 별다를 게 없는 ‘노동과 기도’로 하루 일과를 보낸다.

“수녀원을 도피처나 안전지대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어디에 있든 자신의 위치에서 하느님의 평화를 느낄 수 있으면 됩니다.”

바오로 신부(가명·40대 초반)는 여신자와의 사랑 때문에 신부직을 버렸다. 슈퍼마켓도 경영했으나 현재는 아내와 별거 중이고 한의대에 재학 중이다. “내가 사랑한 건 옛날의 신부였지 지금의 당신이 아니다”라는 아내의 말에 충격을 받아 한동안 편두통에 시달렸던 그는 절망적인 상황을 기도의 힘으로 이겨냈다.

“하느님은 헛돌고 변하는 마음을 잡아주고 용서해주셨어요. 기도의 힘 외에는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자신의 절을 오간 두 남매의 모습이 사랑스러워 어머니의 자리를 선택한 효인 스님(44)과 서울 용산 야채상가에서 13년간 노숙자 500여명을 돌봤던 ‘예수의 작은 형제회’의 스테파노 수사(60)의 이야기도 가슴 저민다.

이들의 출가와 환속의 이유는 제각각이지만 결론은 같았다. 어디에서든 자신의 마음을 닦아야 한다는 것. 그리고 이들은 속(俗)의 세계에서 더욱 절실하고 간절하게 신을 찾고 구도의 길을 가게 됐다는 것이다.

서정보기자 suhchoi@donga.com

▼속인으로 돌아와…▼

△새로운 시작은 쉽지 않지만 한번은 알을 깨고 나와야지요. 그래야 희망이 있으니까요.(카타리나 수녀)

△욕심은 채워도 끝이 없고 한없이 달라고만 합니다. 나 스스로에게 욕심 주의보를 내렸습니다.(정연 스님)

△하느님은 천국을 안 보여줍니다. 천국을 만드는 건 바로 자기에게 달렸기 때문입니다.(스테파노 수사)

△사랑은 주는 것만으로는 안 되고 키워야 합니다.(효인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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