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서 만난 삼국유사]嶺에 새겨진 ‘求道의 길’

  • 입력 2003년 12월 18일 16시 3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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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관령 옛길로 간다.

텅 빈 휴게소. 여기가 언제 그토록 번성했던 곳 이었던가 의아스럽기만 한데, 이곳에서 정상 쪽으로 난 샛길을 타고 올라가자 국사성황당이 나온다.

강릉단오제가 열릴 때마다 성황신을 모시고 내려가는 곳이다.

여기에 김유신과 더불어 신라승려 범일(梵日·810∼889) 국사가 산신으로 자리 잡고 있다.

승려가 산신으로 모셔지기란 매우 희귀한 일. 그렇게 된 연유는 고개를 내려가 굴산사(堀山寺) 터에 이르러서야 알아낼 수 있다.

◀굴산사 터 당간지주는 나라 안에서 가장 크다. 관동대 근처 학산마을 들판에 서있는데, 그 모습이 우람해서 멀리서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5m가 넘는 높이에 거무튀튀한 색과 거칠게 다듬어진 질감이 어우러져 신령스러운 기운마저 느껴진다

대관령 아래, 지금의 강릉시 구정면 학산리에 위치한 굴산사 터. 고개를 다 내려와 남대천 물이 길과 함께 나란히 달릴 즈음, 오른편으로 관동대 안내 간판을 따라 꺾어 들어가면 너른 들판이 보인다.

어떻게 강릉이 예로부터 이 일대의 큰 마을로 명성을 떨쳤는지 알 수 있을 만큼 너른 들판인데, 그런 들판을 가로지르다 보면 우뚝 선 당간지주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옛 굴산사의 자취를 알려주는 표지판이다.

이 마을의 한 처녀가 해가 뜬 표주박의 물을 마시고 임신을 하여 아이를 낳았다. 그 아이가 다름 아닌 범일이다.

출가와 중국 유학 등 범일에 대해 해야 할 말은 많지만 건너뛰기로 하자. 마흔이 넘어 고향에 돌아온 그가 지은 절이 바로 굴산사이다.

지금은 희미한 자취만 남아있지만 들판에 덩그러니 서 있는 당간지주 하나만으로도, 이 절이 누렸던 옛날의 위용을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덩어리 채 두 개를 바투 세워서 만든 이 당간지주는 높이가 5.4m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다.

여러 석재를 얼기설기 편집해 놓은 듯한 부도탑이 마을의 한 편 언덕에 서 있고, 인근에 범일의 어머니가 물을 마셨다는 우물 또한 석천(石泉)이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다.

범일의 가계(家系)를 두고 오늘날 연구자들 사이에서는 김주원(金周元) 쪽의 후손으로 잇대는 데 큰 이의가 없는 듯하다.

김주원은 바로 원성왕(재위 785∼798)과의 왕위 다툼에서 진 다음 강릉으로 그 터전을 옮긴 유력한 신라 왕족의 한 사람. 범일의 아버지는 바로 그 집안 사람이고, 나아가 어머니 또한 이 지역 토호 출신으로 본다.

그런 배경으로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범일이 이 곳에서 크게 활동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거기에는 무슨 처녀 잉태 따위야 개입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슬픈 전설 같은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성황당 산신이 되어 있다. 어머니가 마셨다는 해가 뜬 표주박의 물은 태양과 우물의 신화적 상징으로 해석된다. 처녀 잉태는 신성화의 고리이다.

다른 한편으로 삼국유사에 나오는 이야기를 보면 범일이 어떻게 성황당 산신이 될 만큼 민중의 지지를 받게 되었는가 짐작할 수 있다.

중국에 유학하는 동안 범일은 명주(明州) 개국사(開國寺)에서 한쪽 귀가 잘린 어린 사미승을 만나는데, 소년은 자신도 강릉 사람이라며, 고향에 돌아가거든 낙산사 앞 자기 집을 찾아 어머니에게 안부를 전해 달라고 부탁한다. 범일이 귀국해 찾아갔을 때 뜻밖에 소년의 어머니는 사미승만 한 어린 아들 하나를 데리고 살고 있었다. 아이는 개울가에서 늘 금빛 나는 동자와 함께 논다고 말한다. 범일이 그 개울가로 달려가 모래를 파보니 한쪽 귀가 잘린 정취보살상(正趣菩薩像)이 나왔다.

범일이 만난 한쪽 귀가 잘린 소년 사미승과 한쪽 귀가 잘린 정취보살상.

우리는 그 인연의 고리에서 범일의 생애를 다시 떠올리게 된다. 처녀 몸으로 아이를 낳고 떳떳지 못했을 어머니. 그런 어머니와 함께 외딴 집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을 범일. 그러니 사미승의 부탁을 받고 나서게 된 길은 꿈결같이 옛날의 자기를 찾아가는 길이 아니었을까?

삶의 고단함은 때로 사람을 깊어지게 한다. 그러기에 세상의 고락을 중생과 함께 지고 간다는 정취보살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범일같은 이가 곧 그 보살의 길로 나가 중생과 만난다. 거기서 산신은 탄생한다.

굴산사 터의 들판이 끝난 자리 저 멀리에 대관령은 첩첩한 봉우리마다 눈을 쓰고 있다.

범일이 중국에서 공부한 새로운 선종(禪宗)의 수행방법을 사굴산문((도,사)堀山門)이라는 이름으로 널리 퍼뜨린 본부가 바로 이곳 굴산사다.

절은 사라지고 없지만, 저 영(嶺)만큼은 이 절을 거쳐 간 수많은 수행자들의 발걸음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고운기 동국대 연구교수 poetko@hanmail.net

▼여행지서 만난 삼국유사' 굴산사터 주변엔…▼

강릉시 안팎에는 둘러볼 만한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크게 나눈다면 홍길동전의 허균과 허초희 남매와 관련된 곳들, 신사임당의 유적을 볼 수 있는 곳들, 그리고 18∼19세기 양반가옥의 전형을 보여주는 선교장(船橋莊) 같은 근세의 유적들이다.

강릉시 죽헌동의 오죽헌(烏竹軒)은 신사임당과 율곡 이이의 발자취를 찾아보는 곳이다.

여기 세워진 문성사(文成祠)에서는 매년 10월 말경 대현 이율곡 선생제(大賢李栗谷先生祭)를 거행한다.

허초희의 유적지인 경포대 동남쪽의 초당(草堂)은 저녁밥 짓는 연기가 우거진 송림 사이로 퍼지는 광경이 특히 아름답다. 여기서는 초당 두부 한 그릇 맛보며 쉬어가도 좋을 듯.

집터가 뱃머리를 연상케 하는 선교장은 특히 사랑채인 열화당(悅話堂)과 활래정(活來亭)이 볼 만하다.

동해안의 명소 경포대 해수욕장은 동해안 해수욕장 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경포 호수와 해수욕장을 잇는 풍경이 빼어나다.

한편 경포대와 송도 사이의 강문 마을은 예부터 밤에 오징어를 잡는 배들의 풍경을 보기에 좋은 곳이다.

매년 단오에 강릉 남대천변에서 열리는 단오제는 이제 규모가 커져 전국에서 관광객들이 찾아올 정도다.

:촬영노트: 겨울 사진의 으뜸은 역시 눈 쌓인 겨울산이고, 이런 사진을 찍기로는 대관령만 한 곳이 드물다. 영동고속도로 횡계IC로 나가서 옛 대관령 하행 휴게소에서 상행 휴게소쪽 구름다리를 건너 오른쪽 길로 올라가면 범일을 모신 대관령 성황당이 나오는데, 여기서부터는 온통 눈밭이다.

성황당 아래에 차를 두고 한 시간쯤 능선을 타고 걸어가면 끝없이 펼쳐진 설원, 바로 선자령이 나온다. 바람이 몹시 불고, 평상시 기온이 영하 10도 이하로 떨어지기 때문에 추위에 약한 카메라는 무용지물이다. 눈 온 다음날 오전 9시 전에 찾아 가면 나뭇가지마다 하얗게 핀 상고대를 볼 수 있다.

양 진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tophoto@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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