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송문홍/'장군 사업가'

  • 입력 2003년 12월 16일 18시 3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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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0년 독일통일의 주역이라면 흔히 ‘철혈재상’ 비스마르크를 첫손에 꼽지만 군사적 측면에서는 몰트케 원수(元帥·1800∼1891)를 빼놓을 수 없다. 군대조직에 근대적 참모제도를 처음 도입한 전략의 귀재, 덴마크 오스트리아 프랑스와의 전쟁을 승리로 이끈 명장(名將) 등이 그에게 따라붙는 수식어들이다. 제1차 세계대전 초기에 독일군을 지휘한 같은 이름의 조카와 구별하기 위해 ‘대(大) 몰트케’로 불리는 그의 군사이론은 육군사관학교 교재로 활용됨은 물론 현대 경영학에서도 연구 대상이 되고 있다.

▷남재준 육군 참모총장이 최근 전 육군 장교들에게 보낸 지휘 서신에 몰트케 원수가 등장했대서 화제다. 남 총장은 “몰트케가 사후에 남긴 유산이라곤 침대와 거울, 운동기구, 서적 등 몇 점의 유품에 지나지 않는다. 평소 깨끗한 도덕성을 갖춘 장교야말로 전쟁 때 강력한 지도력을 갖춘 용자(勇者)가 된다”고 강조했다. ‘사병에게 존댓말을 하는 장군’으로 군 안팎의 신망이 높은 남 총장이 굳이 100여년 전의 프로이센 장군을 예로 든 심정이 이해된다. 전 국방품질관리소 소장(예비역 소장)의 수뢰로 시작된 무기도입 비리사건에 전현직 군 장성이 여럿 연루됐다는 의혹이 갈수록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 경찰 수사를 받고 있는 군납업체 세 곳에 예비역 장성이 6명이나 재직했다는 사실도 보도됐다. 그 중에는 현직 국방부 고위 관계자도 포함돼 있다고 하니 일부 군 고위층의 무디어진 윤리감각이 놀랍다. 당사자들은 물론 자기들은 ‘명목상’ 경영진이었고 군납 비리에 개입한 적도 없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군납업체는 단순히 퇴역 장성을 ‘예우’하기 위해 월급을 줬다는 말인가? ‘눈 가리고 아웅’식의 이런 주장을 곧이곧대로 믿을 국민이 과연 얼마나 될지 의심스럽다.

▷장군은 명예를 먹고 사는 대표적인 직업이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든 한번 장군은 죽을 때까지 장군으로 예우해주는 것도 그들의 명예를 존중해서다. 그런 장군들이 퇴역 후 명예 대신 돈을 좇는 ‘사업가’로 변신하는 것은 볼썽사납다. 국가정보원의 경우 “재직 중은 물론 퇴직 후에도 직무상 지득(知得)한 기밀을 누설해서는 안 된다”는 규정이 있다(국가정보원직원법 17조). 이러다간 군 장성 출신자에게도 퇴역 후 일정 기간 방산업체 취업을 금지하는 법이 필요할지 모르겠다. ‘장군 사업가’들은 이런 논의가 나오는 것 자체를 부끄럽게 여겨야 한다. 주변의 존경을 받으려면 먼저 자기 명예를 지키겠다는 결의를 보여줘야 하지 않겠는가.

송문홍 논설위원 songm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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