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세인 생포 이후]총구 들이대자 "난 사담…쏘지말라"

  • 입력 2003년 12월 15일 18시 57분


코멘트
13일 오전 10시50분(이하 현지시간) 이라크 주둔 미군은 믿을 만한 첩보를 입수했다. 미군이 애타게 찾던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의 은거지에 관한 것이었다.

후세인의 고향인 티크리트 남쪽 15km에 있는 아드드와르 인근 농가가 은신처로 지목됐다. 이로부터 8시간40분 뒤 미군은 전후 최대성과로 꼽히는 후세인 체포에 성공했다. 다음은 미군이 공식적으로 밝힌 작전상황.

▽작전 돌입=오후 5시, 미군은 ‘붉은 여명’ 작전에 돌입했다. 첩보를 접수하고 6시간10분 동안 진위를 분석한 뒤 신빙성이 높다고 판단한 것.

아드드와르는 후세인 정권 2인자였던 이자트 이브라힘 알 두리의 고향이다. 알 두리는 아직 체포되지 않은 채 저항세력을 지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 제4보병사단 레이먼드 오디어노 사단장은 첩보의 신빙성에 대해 “후세인 인척 중 한 명에게서 최종 정보를 확보했다”고 말했다.

오후 6시, 제4보병사단 제1여단의 최정예 병사 600명이 소집됐다. 다목적 공격용 지프인 험비 30대와 전차 25대, 자주포가 동원했다. 공격용 헬기인 아파치 1개 중대가 공중 엄호를 맡았다.

오후 7시, 특공부대에 출동 명령이 떨어졌다. 오디어노 사단장 등 지휘부는 목표가 ‘최고수배대상(HVT) 1호’ 후세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부대원들은 단순히 ‘대어(大魚)’를 체포하는 것으로만 생각했다.

▽1차 수색=출동 명령 35분 만에 특공부대가 투입됐다. 대상 지역은 암호명 ‘오소리1’과 ‘오소리2’ 등 두 곳. 두 팀으로 나뉘어 은밀하게 산개해 이동하던 특공부대는 오후 8시 정각 목표지점 두 곳을 동시에 급습했다.

그러나 두 곳의 가옥은 모두 텅 비어 있었다. 특공부대원들은 허탈감에 빠졌다. ‘붉은 여명’ 작전은 실패로 돌아가는 것 같았다.

▽2차 수색=바로 그때 ‘오소리2’로부터 200m 떨어진 또 다른 농가에서 이라크인 2명이 도주하는 것이 목격됐다. 오디어노 사단장은 “즉각 반경 1.1km를 차단하고 정밀 수색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낮은 토담의 이 수상한 농가 곁에는 오렌지색 택시 한 대가 주차되어 있었다. 특히 이 농가는 티그리스강과 인접해 있었다. 육상과 수상 도주로를 모두 갖춘 셈. 의구심이 든 미군은 예상 밖의 지점에 대한 수색에 나섰다.

하지만 이 농가의 단칸방도 역시 비어 있었다. 또 허탕인가. 잠시 후 마당쪽이 소란해졌다. 몇몇 부대원들이 마당에 깔려있던 진흙투성이의 양탄자를 걷어내고 흙을 파내자 스티로폼 덮개가 나왔고 이를 들춰내자 좁은 지하통로가 드러났다.

수색조가 지하통로를 2m 정도 내려가자 산발한 이라크 노인 한 사람이 웅크린 채 누워 있었다. 무릎 위에는 권총 한 정이 놓여있었다. 일촉즉발의 순간. “누구냐”는 수색조의 질문에 이 이라크인은 “나는 이라크 대통령 사담 후세인이다. 협상하고 싶다”고 말했다. 뉴스위크는 후세인이 “쏘지 말라”는 말도 덧붙였다고 보도했다.

후세인이 누워있던 토굴 안쪽에는 75만달러가 담긴 돈상자도 놓여 있었다. 포장을 뜯지 않은 옷가지도 발견됐다. 주민들은 “이 농가의 주인이 후세인의 요리사였던 카이스 나메크”라고 말했다. 그는 수일 전 미군에 연행됐으며, 후세인이 잡히기 직전 이 농가에서 뛰쳐나가다 연행된 두 명도 그의 형제로 알려졌다. 미군은 오후 9시15분 현장에 도착한 헬기에 후세인을 태워 압송했다. 미 국방부측은 이 작전을 ‘정보 분석과 체포 작전의 합작품’이라고 평가했다.

이 진기자 leej@donga.com

클릭하면 큰 이미지를 볼 수 있습니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