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지사는 9급으로 창녕군 읍면사무소에서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그곳에서 창녕군청 경남도청을 거쳐 6년 만에 내무부 본부까지 진입하는 집념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그는 작은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단돈 1000달러를 들고 미국으로 건너가 가방장사로 인생의 전기를 마련했다. 김 지사는 ‘혁 트레이딩’사를 설립하고 허리에 두르는 가방인 ‘벨트 파우치’를 내놓아 히트상품을 만들었다. 옛날 보부상들이 찼던 전대(纏帶)에서 힌트를 얻었다고 한다.
▷뉴욕 교민사회에서 가발사업으로 돈을 번 박지원 전 대통령비서실장이 ‘호남 인맥의 대부’였다면 가방사업으로 돈을 번 김 지사는 ‘PK 인맥의 대부’였다. 김 지사는 뉴욕민추협을 결성해 민주화운동을 후원하다가 김영삼 전 대통령 밑에서 대통령사정민정비서관을 거쳐 관선 경남도지사로 임명됐다. 관선 민선을 합하면 4선 도지사다. ‘주식회사 경상남도’의 최고경영자(CEO)임을 자처한 그는 작년 한나라당 대통령후보 경선 때 ‘대한민국 CEO’가 되려고 하다가 도중에 날개를 접어야 했다. 그런 그가 열린우리당에 입당할 예정이다.
▷한나라당은 당적을 바꾼 김 지사에 대해 ‘배신자’ ‘변절자’ ‘공작정치의 산물’이라고 비난한다. 한나라당의 아성인 경남 현지의 분위기도 좋은 편은 아닌 모양이다. 김 지사의 당적 변경은 PK 공략에 당운을 건 우리당의 끈질긴 공들이기가 만들어낸 작품인 것 같다. 우리당 쪽에서 ‘대한민국 CEO’가 되고 싶어 하는 그의 야심을 자극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그러나 김 지사는 지방선거에서 당적을 보고 지지한 주민의 기대를 저버렸고 4년 임기를 절반도 채우지 않고 사퇴하려 하고 있다. 김 지사의 이번 선택에 대해 경남도민이 어떤 판단을 내릴지 궁금하다. 하기야 그의 선택이 가져올 미래를 허리에 찬 전대처럼 열어볼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황 호 택 논설위원 ht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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